본문 바로가기

서아시아67

스리랑카, 맥우드 실론티 공장 작년 일월 스리랑카 여행 중 들린 스리랑카 차 농장. 일 년이 지났지만 사진을 정리하다보면 지난 일이 어제처럼 되살아난다. 실론티로 유명한 맥우드 차 농장은 '콜롬보' 동쪽 스리랑카 중앙산지의 '페드로산' 기슭에 있다. '누와라엘리야' 지역에는 식민지 시절 영국인이 만든 차 농장이 여러 곳 있는데 이곳은 그 중 하나로 '맥우드'라는 영국 선장이 1841년 설립했다고 한다. 그러니 역사가 200년 가까이 되는 식민지 시절의 현장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이 다 영국인처럼 보인다. 식민지 시대를 겪은 우리로서는 이 모든 것들이 예사롭지 않다. 계곡 중간지점에 위치한 농장 마당에서 보이는 풍경. 사방이 차밭인데 그 사이사이 판자집 모양의 현지인들의 가옥이 보인다. 스리랑카는 총 칼을 든 식민지배.. 2012. 10. 4.
남인도, 마하발리푸람 작년에 다녀온 남인도 사진을 유적지별로 정리했다. ‘마하발리푸람’은 첸나이에서 65Km 정도 떨어져 있는 바닷가 마을로 바닷가에 널린 바위를 통째로 깨고 다듬어 세운 힌두사원과 다양한 석조물이 있어 유명한 곳이다. ‘마하발리푸람’은 남인도' Pallava 왕조'(AD 3세기-9세기)의 수도로 '뱅골 만'으로 향한 잘나가던 항구도시였다. 이 도시에는 크게 세 곳의 유적지가 있는데 이곳은 그 중 하나인 'Five Rathas' 이다. 사원에는 크고 작은 다섯 개의 바위를 통째로 깎아 만든 조형물들이 있는데 이 기념물들은 다 시바의 사원으로 벽면에는 아직도 생생한 모습의 힌두신들이 숨 쉬고 있다. 석조물은 전해오는 말로 오백 명의 석공들이 삼십여 년 동안 만들었다고 하는데 절대자에 대한 깊은 신앙심은 물론이고.. 2012. 10. 1.
인도, '사르나트(녹야원)' 불교의 성지 ‘녹야원’. 인도 바라나시에서 북쪽으로 약 한 시간 거리인 이곳은 여기서는‘사르나트’라 부르는데 인도에 있는 불교 4대 성지 중 하나다. 석가모니는 깨달음을 이룬 뒤 이곳에서 처음으로 제자들에게 설법하셨다고 전해 온다. 입구에 들어서자 시야가 확 트이는데 아이 하나가 화단 가에서 뜬금없는 연을 날린다. 지금 생각해 보니 바르나시의 연 축제가 끝나고 얼마 되지 않은 때라 그런 듯하다. '녹야원' 뜰에 들어서자 모든 이의 시선을 끄는 것은 거대한 다메크 탑이였는데 그 옆 황금 탑이 더 궁금해 보였다. 알고 보니 '자인교' 탑이다. 불교 최고 성지에 떡하니 자기들 사원 탑을 세웠다. 과연 인도는 자비가 넘치는 곳이다. 안으로 더 들어가자 드디어 이곳 '녹야원'에서 제일 큰 건물 ‘다메크’탑이 나타.. 2012. 9. 12.
중국, 사천성 황룡 가는 길 비 때문에 자전거가 꼼짝 못한다. 방에서 작년 8월 말 다녀온 황룡사진이나 정리했다. 강이 네 개 흐르는 곳이라 하여 '사천'이라는 이름이 붙은 '사천성 성도 공항'. '황룡' 가는 길은 이곳에서 시작된다. '성도 공항'에 도착한 것은 밤늦은 시각 호텔로 직행하여 그대로 잠에 빠졌다. 다음날 이른 아침 호텔 앞 풍경. 우리 일행은 택시 아닌 버스를 타고 북쪽으로 35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황룡을 향해 출발했다. '황룡' 가는 중국의 213번 국도. 출발한 버스는 무려 일곱 시간 쉬지 않고 '황룡'을 향해 달리는데 유비가 세운 촉나라의 아름다운 풍광이 버스 창 너머로 펼쳐진다. 4년 전 일어났던 쓰촨성 문천 지진현장을 지나 쉬지 않고 달리던 버스는 풍광 좋은 휴게소에 들렀다. 보기에만 좋은 티벳의 주전부리.. 2012. 8. 21.
터키, 에베소 유적지 터키 여행사진 속에서 에베소 사진을 정리했다. 'Ephesus'는 기원전부터 번성했던 고대도시로 로마제국의 4대 도시 중 하나였으며 실크로드의 종착지였고 초대 기독교 역사와 밀접한 도시다. 사진은 입구에서 바라본 고대 에베소 상공회의소 자리. 돌무더기처럼 보이지만 정면 왼쪽으로 내려가면 당시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는 건물을 꽤 볼 수 있다. 유적지 지하에 묻혀있던 하수도관. 지금 막 공장에서 싣고 온 토관처럼 멀쩡한 모습이 이천 년 세월이 무색하다. 기독교를 가장 박해했던 폭군 도미티아누스 황제 신전 터 기둥. 이곳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전이었다는데 지금은 제일 뒤로 물러나 있다. 맨천 돌덩이만 널린 곳을 구경하자니 렌즈가 시들한 것 같아 졸고 있는 고양이 얼굴을 겨눴다. 그러나 유적지 고양이도 무심한 것.. 2012. 4. 5.
터키, 데린구유 지하마을 두꺼운 노트북을 날씬 울트라북으로 바꾸다가 발견한 터키 여행사진. 깜깜한 하드에 죽은 듯이 지내다 깨어난 사진이다. '데린구유'(Derinkuyu)는 깊은 우물이란 뜻을 가진 터키 카파도키아 지역에 있는 땅 속 관광지로 지하 8층, 55m 깊이의 고대 지하마을이다. 관광지 분위기가 전혀 나지 별로 나지 않는 썰렁한 공터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표지판만이 이곳이 유적지임을 알려주는 곳. 입구도 어디 화장실 같은 작은 문 하나가 전부다. 땅속으로 들어가는 문이 되겠다. 그러나 좁은 통로를 내려가자 정말 사람이 살만한 공간이 하나 둘 나타난다. 이 지하 공간은 천연 동굴의 음침한 분위기와 많은 차이가 있었는데 특히 보송보송한 느낌이 드는 따뜻한 실내 공기가 인상적이다. 그래서인지 이곳에서 찍는 사진은 생각밖으.. 2012. 3. 20.
이스탄불, 피에르 로티 언덕 터키 이스탄불 '피에로티전망대'를 케이블카로 올랐다. 언덕 아래는 온통 무덤이다. 이곳은 죽은 사람들과 함께 보는 전망대다. 이곳이 피에르 로티 언덕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은 국제연애 때문이란다. 피에르 로티(1850-1923)는 프랑스 해군 장교이며 작가였다. 그는 이스탄불에서 유부녀와 눈이 맞았다. 그리고 그들은 남의 눈을 피해 여기 으슥하지만 경치 좋은 공동묘지에서 몰래하는 사랑을 즐겼다. '피에르 로티'가 근무를 마치고 프랑스로 돌아간 후, 여자는 그만 연애사실이 들통 나 바로 명예살인을 당한다. 몇 해 뒤 애인을 잊지 못한 피에르 로티는 이스탄불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를 기다리는 것은 애인의 슬픈 주검뿐. 그날 이후 그는 늘 이곳에 있는 차이하네(찻집)에 들러 죽은 여자를 생각하며 여생을 보냈다는.. 2011. 11. 17.
터키, 쿠사다시 아침 일곱 시 경 아침도 미루고 터키 일출을 보자고 선데크로 올라왔다. 그러나 삼십 여분 기다리다 맞이한 일출이 기대이하다. 서쪽으로 너무 많이 왔나보다. 아직 아침 식사 전인데 페리 부두에는 이른 관광에 나선 사람들이 보인다. 근처에 있다는 '에베소' 투어에 참여한 사람들이다. 우린 몇해 전 구경한 까닭에 패스했다. 해가 뜨고 '쿠사다시' 시내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꽤 큰 항구도시인데 나중에 알아보니 터키에서는 에게 해로 나가는 가장 큰 도시다. 별다른 투어 신청을 안 한 까닭에 아침 식사를 느긋하게 하고 여덟시 너머 어슬렁거리며 시내 구경에 나섰다. '귀베르진'이란 이상한 이름을 지닌 요새에서 만난 올리브나무. 잘게 찢은 화장지를 가지에 잔뜩 매달고 있는데 그 자체로 신비하다. 분위기 좋은 관광지.. 2011. 10. 27.
인도, 뉴델리 꾸뚭 미나르 (Qutub Minar) 2010년 1월에 다녀온 인도 여행 사진을 정리했다. 인도 뉴델리의 제 1 관광명소인 ‘꾸뜹 미나르 유적군’. 7년 지난 사진을 보니 얼마나 새파란지 잠시 놀랐다. 우리는 늘 지나고 나서야 시간의 소중함을 안다. 이곳의 주인공 '꾸뜹 미나르'는 현존하는 벽돌탑 중 세계최고의 높이란다. 높이가 72.5m, 기단지름 약 15m, 상층부는 약 3m. 높이도 높이지만 아랫부분이 얼마나 넓은지 그야말로 거대한 탑이다. 기단 부위의 이 문을 통해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데 잦은 사고로 인해 1982년부터 폐쇄했다고 한다. 탑을 중심으로 주변에는 붉은 사암으로 만든 이슬람 사원의 흔적이 널렸다. 1199년 당시 '쿠툽 미나르'를 세운 사람은 델리 최초의 무슬림 왕인 '쿠툽우드딘 아이박'. 그러나 사실은 그의 통치.. 2011. 4. 5.
인도, 뉴델리 ‘자마 마스지드’ 인도에서 가장 큰 이슬람 사원으로 타지마할을 세운 무굴제국의 샤자한 황제가 만들었다고 한다. 입구가 세 곳 있는데 이곳은 북쪽 문. 붉은 사암으로 된 건물은 평지인 주변을 아우르는 약간 높은 지대에 자리해 그 자체로 사원의 위엄과 신성함을 내 보인다. 입구에서 입장료 대신 신발도 벗어 맞기고 몸 검사도 하며 이슬람 사원구경의 마음가짐을 다잡는다. 입장 순서를 기다리다 뒤돌아 본 풍경. 앞이 ‘찬드니 시장’ 쪽이고 사진에는 안 보이지만 오른쪽 십 여분 거리에 거대한 붉은 성(랄 낄라)이 있다. 사원에 들어가 가장 처음 마주한 것은 동쪽 문이다. 황제만이 드나들었다고 하는 이 문은 요즘 금요일과 이슬람 축제 기간에만 사용한단다. 그리고 뒤돌아 본 모스크의 중심 ‘미흐라브’. 모스크의 예배실은 항상 메카를 향.. 2011. 4. 1.
인도, ‘아그라 성’ (Agra Fort) ‘아그라 성’의 주 출입구 ‘델리 게이트’ (DelhiGate). 철옹성이란 바로 이런 모습이다 하는 것 같은 색깔까지 녹 슨 쇠처럼 붉은 빛의 성이다. 성 자체도 그렇지만 들어가는 통로도 꽤나 무시무시하다. 석축으로 견고하게 포장된 길을 따라 3개의 아치형태 문을 지나면 드디어 성의 내부가 모습을 드러낸다. ‘자항기르 궁’ 앞에서 바라본 우리가 들어온 방향. 오른쪽의 건물처럼 큰 대문이 방금 들어온 서쪽 문이다. ‘자항기르 궁’ 입구도 성 입구만큼이나 튼튼하다. ‘아그라성’은 1565년 무굴의 3대 황제 ‘악바르’ 대제가 세운 요새로 그의 귀한 아들이자 4대 황제가 된 ‘자항기르’가 이곳에서 컸단다. '아그라성'은 ‘악바르’ 대제가 세웠지만 지금의 '아그라 성'은 5대 황제 샤자한의 작품이라고 해도 과.. 2011. 3. 30.
인도, ‘파테푸르 시크리’ 성 ‘파테푸르 시크리’ 궁은 아그라 서남쪽 38km 쯤에 자리한 ‘악바르’ 황제가 세운 왕궁이다. ‘자이푸르로’ 가는 길목에 있어 여행객들이 대부분 들려 가는 곳이기도 하다. 황제는 1569년 아들을 점지해 준 도사에게 보답을 하고자 수도를 일부러 아그라에서 이곳으로 옮기며 왕궁을 세웠다. 그러나 물 부족 등으로 14년 만에 다시 이곳을 버리고 떠나는 바람에 이후 400년간 버려진 왕궁이 된 비운의 역사를 갖고 있다. 왕궁에 들어서면 만나는 2층 건물 ‘디와니카스’. ‘Akbar’ 황제가 4대 종교지도자들과 국사를 의논하던 접견실. 궁에서 가장 화려하게 돋보이는 건물이다. 보석의 집이라고도 부른단다. ‘디와니카스’의 내부. 많은 조각물을 이고 있는 만다라 같은 기둥이 가운데 있고 천정에 4개의 발코니가 기둥.. 2011. 3. 27.
인도 ‘암베르’ 성(Amber Fort) ‘자이푸르’에서 북동쪽으로 11㎞ 떨어진 산줄기에 자리한 ‘자이가르 성’(Jaigarh Fort). ‘암베르 성’(Amber Fort)에 가까워지면서 내내 보이는 멋진 풍경이다. 산 위 성은 ‘암베르’의 외곽수비를 담당했단다. 왼쪽 ‘자이가르 성’과 그 오른쪽 아래에 자리한 ‘암베르 성’. 성이자 왕궁인 베이지색깔의 거대한 건축물이다. 인도의 3대 성 중 하나란다. 무굴제국의 ‘아그라 궁’ 보다 더 화려해 보이는 궁전으로 정면이 내궁으로 들어가는 대문인 ‘가네쉬 폴’(Ganesh Pol). 각종 대리석으로 멋지게도 만들었다. 겉도 그렇지만 궁 안도 요란하기 그지없다. 궁의 중심부이자 2층 정원 ‘쾌락의 정원’(Aram Bagh). 다윗의 별을 닮은 연못과 화단이 잘 어우러진 아름다운 곳. 궁 정원 창가에.. 2011. 3. 25.
남인도, ‘카일라사나타’ 사원(Kailasanathar temple) 입구 쪽에서 비스듬히 바라 본 사원 전경. ‘비마나’ 앞쪽에는 흰 빛깔의 ‘만다파’가 선명하다. 보이지는 않지만 두 건물 사이에 사당이 한 채 더 있다. 사원에서 탑을 순례하는 공간인 요도(繞道)와 감실들. 가로로 길쭉한 장방형으로 되어 있는 사원의 벽은 시바의 아바타를 모신 작은 사당들이 울타리 역할을 하며 ‘비마나’를 둘러싸고 있다. 모든 감실 꼭대기에는 빵모자 형태의 ‘시카라’가 있다. 사원의 주탑 ‘비마나’ 중앙에 조각된 ‘링고드바바’ (Śiva as Lingodbhava) ‘비마나’는 드라비다 양식에서 나타나는 사원의 중심탑으로 남부 힌두사원의 대표적인 건축양식이다. 이 사원은 7세기 말 '라야심하'(Rayasimha)에 의해 세워진 후 그의 아들에 의하여 증축된 '시바'(Shiva) 사원으로,.. 2011. 3. 22.
마두라이, ‘티루말라이 나야크 궁전’(Thirumalai Nayak Palace) 시멘트 블록으로 그냥 그렇게 만든 것 같은 왕궁 입구. 하지만 이곳은 18세기 ‘마두라이’ 지역을 지배했던 ‘나야크’(Nayak) 왕조의 궁궐이다. 그러나 지금의 궁은 원래 모습의 1/4쯤에 해당되는 일부분이란다. 이곳은 왕궁의 안뜰에 해당되는 곳으로 지금도 공연장으로 사용되는 곳이다. 접이식 의자처럼 보이지만 붙박이 철제의자로 어디 놀이동산 공연장 같은 분위기다. 홀을 둘러싼 회랑은 벽돌을 쌓아 회칠을 한 굵고 높은 기둥들이 늘어섰다. 별 특이한 건축양식이 다 있구나했는데 알고 보니 이태리 건축가가 설계 시공을 했단다. 그런데 이 양반이 코스모폴리턴 이었던지 기둥은 이탈리아, 아치는 이슬람, 기둥장식은 중국, 그리고 꼭대기는 힌두 신으로 마감을 하는 바람에 세계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희한한 건물이 되었.. 2011. 3.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