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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아시아

인도, ‘파테푸르 시크리’ 성

by 조인스 자전거 2011. 3. 27.

‘파테푸르 시크리’ 궁은 아그라 서남쪽 38km 쯤에 자리한 ‘악바르’ 황제가 세운 왕궁이다.

‘자이푸르로’ 가는 길목에 있어 여행객들이 대부분 들려 가는 곳이기도 하다.

 

 

 

황제는 1569년 아들을 점지해 준 도사에게 보답을 하고자

수도를 일부러 아그라에서 이곳으로 옮기며 왕궁을 세웠다.

그러나 물 부족 등으로 14년 만에 다시 이곳을 버리고 떠나는 바람에

이후 400년간 버려진 왕궁이 된 비운의 역사를 갖고 있다.

 

 

 

왕궁에 들어서면 만나는 2층 건물 ‘디와니카스’.

‘Akbar’ 황제가 4대 종교지도자들과 국사를 의논하던 접견실.

궁에서 가장 화려하게 돋보이는 건물이다. 보석의 집이라고도 부른단다.

 

 

 

‘디와니카스’의 내부.

많은 조각물을 이고 있는 만다라 같은 기둥이 가운데 있고

천정에 4개의 발코니가 기둥과 연결되어 있다.

‘시키리’ 성안에서 가장 화려한 곳이다.

 

 

 

이곳의 건물들은 그 하나하나가 한 덩어리의 붉은 사암 조각상이다.

특히 힌두와 이슬람의 건축양식이 혼합되어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희한한 풍경을 연출한다.

 

 

 

‘디와니 카스’ 옆 건물 ‘앙크 미차우리’(Ankh Michauli).

왕의 개인 공간으로 특별한 식사나 궁녀들과 놀던 곳.

그리고 그 앞의 정자 형태 건물 'Astrologer's seat'.

말 그대로 돌을 떡주무르듯 했다.

 

 

 

거대한 저수조. ‘악바르’ 황제가 갑자기 이곳을 버린 가장 큰 이유는 물 때문이었다고 한다.

아무튼, 이 도시가 무굴제국의 수도였던 기간은 비록 14년에 불과했지만

현재 잘 보존된 무굴제국의 유적지로는 이곳만한 곳이 없단다.

 

 

 

이 궁에서 가장 넓은 공간.

석제로 바닥을 꾸민 ‘피치시 정원’이라 부르는 곳으로

황제가 시녀들을 장기 말 삼아 놀이를 하던 곳이란다.

 

 

 

 

왕궁구역 중심부에 자리한 5층 건물 '판치마할'(Panch Mahal).

궁녀들의 거주지로 칸막이가 쳐진 작은 방이 무려 360여개가 있었다고 한다.

모두 176개의 가는 기둥이 있는데 같은 모양은 하나도 없다.

 

 

 

벽체 없이 기둥만으로 이루어져 ‘바람의 궁전’이란 별명을 얻은 건물은

‘악바르’(Akbar) 자신이 설계했다고 전한다는데 특이한 생김새가

어딘가 아마추어 냄새가 나긴 난다.

 

 

 

왕궁의 중심부에 자리한 인공연못(Anoop Talao)과 그 뒤 왕의 처소 ‘카스마할’.

이곳이 400여 년 전 버려진 이유가 물 때문이었다고 하던데

그 말이 실감 나는 것이 연못의 저 썩은 물이다.

 

 

 

정사각형 연못 가운데에는 같은 형태의 인공섬?이 있다.

연못 주변에서는 물론 주변의 높은 건물에서도 볼 수 있는 최고의 무대다.

연못 너머 정면 기다란 건물 뒤가 이곳에서 가장 규모가 큰 ‘조다바이’ 궁전이다.

 

 

 

궁 어디서나 그 모습을 드러내는 황제의 접견실 ‘디와니키스’.

지붕 모양이 무굴제국을 무너뜨린 영국군의 모자를 닮았다.

 

 

 

5층 판치마할 바로 앞의 건물들은 ‘압다르 카나’(Abdar Khana)

당시 이곳에 거주하던 궁녀들의 학교 건물이라고 하는데

천재가 많은 인도의 힘이 저곳에서 나왔대나 뭐나.

 

 

 

 

연못을 건너 바라본 풍경.

‘디와니카스’가 정면이고 그 앞이 파치시 정원.

오른쪽 건물은 '터키 부인의 집'(Turkish Sultana's house)

왼쪽은 ‘판치마할’.

 

 

 

‘조다바이’ 황후의 처소 ‘Jodha Bai's Palace’의 망중한.

붉은 사암의 색깔이 나무대문까지 전염되었는지 같은 색이다.

 

 

 

 

궁을 나서다 만난 왕궁 꼭대기에 올라앉은 앵무 한 쌍.

앵무가 앉지 못하게 철망을 두른 모양인데 새는 그 위에 앉아 똥을 싸네.

인간의 어리석음을 만방에 알리는 형세가 아닌가.

 

 

 

‘파테푸르 시크리’ 는 작고 지저분한 도시 한 귀퉁이에 홀로 자리했다.

하지만 돌로 만들었기에 400년이 흘렀어도 오롯이 그 외관을 유지한다.

부귀영화에 눈 먼 우리들에게 한 수 가르치려는 신의 뜻이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