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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이스라엘, 예루살렘 '통곡의 벽'

by 조인스 자전거 2012. 5. 22.

예루살렘 통곡의 벽은 조용하고 우울한 분위기를 풍기는

혹은 여기저기 흐느낌 소리만 들리는 엄숙한 그런 곳이라고 늘 생각했었다.

 

 

 

그런데 웬걸 역사지식과 실제상황은 과연 차원이 다르다.

그곳은 쨍한 햇빛아래 환한 얼굴의 관광객과 참배객이 뒤섞인 

싱싱한 에너지가 넘치는 그런 곳이었다.

 

 

 

예상 밖의 여유 있는 분위기에 젖어 동서남북 주변을 둘러봤다.

서쪽, 6일 전쟁 때 아랍의 집중 공격으로 포격당해 거의 폐허가 되었다 다시 재건된 유대인 구역.

바로 앞은 공사 중인지 어수선하다.

 

 

북쪽, 통곡의 벽 지하부분을 볼 수 있는 곳.

햇빛을 싫어하는 사람들이나 아니면 날씨가 궂을 때 통곡하는 곳.

 

 

 

남쪽, 통곡의 벽 유적지로 들어오는 정문.

통곡의 벽이 있는 이곳 성전산(성전이 있다 해서 붙은 산 이름)은

BC 950년 다윗의 아들 솔로몬 왕이 최초의 솔로몬 성전을 지은 이후

유대인의 기도처로 자리매김 된 곳이다.

 

 

 

통곡의 벽을 카메라로 겨누었는데 유대인이 지나가다 제대로 멈춘다.

히브리 족장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 이삭의 아들 야곱, 야곱의 아들 유다. 그 유다의 후손 이겠다.

 

 

 

통곡의 벽은 말 그대로 벽이다.

그러나 이 돌 벽에는 이스라엘 민족의 비운의 역사가 오롯이 담겼다.

최초의 솔로몬 성전은 BC 586년 '아브' 달 9일 바빌로니아의 '느부갓네살 2세'에게 무너지고

유대인들은 노예가 되어 바빌론으로 끌려간다.

 

 

 

세월은 흘러 바빌로니아가 페르시아제국에게 멸망당하자 유대인은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여

BC 515년 폐허가 된 성전을 재건하나 BC 168년 '셀주크 왕조'에 의해 다시 파괴된다. 

그 후 세월이 흘러 이제 이곳은 나라 잃은 유대인들의 정신적인 성지가 되었다.

 

 

 

AD 64년 로마제국시대 악명 높은 '헤롯'왕은 유대인의 환심을 얻기 위해

기존 성전의 두 배나 되는 크고 화려한 성전을 60년이나 걸려 새롭게 세웠다.

이것이 세 번째 성전이며 이 성전의 축대가 바로 통곡의 벽이다.

 

 

 

그러나 헤롯성전은 그 후 오래 가지 못한다. 로마제국에 항거하는 유대인의 반란이 일어났고

당시 천하무적이었던 로마군대는 AD 70년 '아브' 달 9일 성전을 불태워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게 완전히 박살냈다.

 

 

 

그러나 로마인들은 그들의 성벽 축조기술을 보존하기 위하여 성전의 서벽 일부를 남기게 되는데

이때부터 유대인들은 이곳에 모여서 성전 잃은 슬픔과 나라 잃은 비통함을 달래며 울부짖었고

그 이후 이 벽은 통곡의 벽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여성들만 출입하는 통곡의 벽.

통곡의 벽은 하루 24시간 일 년 열 두 달 개방되나 남녀가 유별하다. 마누라가 찍은 사진이다.

 

 

 

삼천 년 전 유대인이 세운 솔로몬 성전 터에  천 칠백 년 전 무슬림이 세운 황금사원이 빛난다.

과연 이 멈출 줄 모르는 역사의 수레바퀴는 어디를 향해 가는지.

 

 

 

예루살렘 성을 나와 언덕을 내려오며 뒤돌아 본 풍경. 예루살렘 주민들이 늘 한다는 말.

관광객들은 예루살렘성에 들어와 울고 웃고 쓰러지고 유대인들은 통곡의 벽에서

기도하며 슬피 울고, 회교도들은 황금 돔 사원에서 엎드려 절하며 기뻐하고 

기독교인들은 골고다 언덕에서 엎드려 기도한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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