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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조지아, 바르드지아 동굴 수도원

by 조인스 자전거 2018. 2. 9.

‘바르드지아 동굴 도시’ 입구는 여유가 있다 못해 아예 낭만적이다.

아래에서 깎아지른 듯 보이던 절벽은 막상 올라와 보니 이처럼 편안한 길이 있다.

 

 

 

 

계곡을 마주한 건너편 언덕 풍경도 꽤나 멋지다.

구곡양장의 고갯길이 산을 넘어가는데 계속 따라간다면 터키 국경이 나온단다.

 

 

 

허나 역시 아래를 보니 아찔할 정도로 높다.

이리 높은 곳에서 그것도 굴을 파고서야 살았다 생각을 하니

갑자기 그 고달픈 삶에 기분이 착 가라앉는다.

 

 

 

 

그러나 잠시 정신을 차리고 사방을 둘러보자니

질긴 인간의 생명력에 존경심이 우러나온다.

 

 

 

 

지금도 물론이지만 이 동굴 도시가 완공되었을 그 옛날에도

이곳은 국민들에게는 기적에 가까운 건축물로 여겨졌다고 한다.

당시 이 동굴 거주지는 13층이나 되는 높이에 수천 개의 방을 갖고 있었고 

무려 5만 여명의 사람들이 생활했다고 전한다.

 

 

 

 

 

 

하필 이 장소에 이러한 대규모의 비밀스런 동굴 도시가 만들어진 이유는

무슬림 투르크인의 침입 때문.

 

 

 

 

 

즉 조지아의 왕 ‘기오르기 3세’는

터키와 아르메니아 국경으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에 자리한 이곳 ‘바르드지아’를

군사요새로 삼을 목적으로 만들었다는데 그때가 1180년경이다.

 

 

 

 

바르드지아 동굴 도시 정 가운데 자리한‘Dormition의 교회.

오른쪽 기오르기 3세와 그의 딸 타마르 여왕의 프레스코 벽화. 

2년 전 화재로 인한 끄름 제거 작업 진행 중.

 

 

 

 

'기오르기가 3세'가 1184년 죽자 그의 딸 타마르는

바르드지아를 요새화된 수도원으로 변모시켰다는데

당시 전해오는 이야기가 재밌다.  동굴을 파나가면서 도시를 확장할 당시 하루 작업이 끝나고

다음날 보면 작업 도구들이 신기하게도 다음 공사위치로 옮겨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쉽게 공사를 할 수 있었다는 믿거나 말거나 이야기.

 

 

 

교회 문 앞에 달린 종 세 개.

볼품없는 종이 어쩌면 저렇게 자연스러운지 저절로 신앙심이 우러나온다.

동굴도시는 이곳을 중심으로 동서쪽 둘로 나뉜다.

 

 

 

 

지금도 사용하는 수도원의 수조.

 

 

 

 

한 사람이 겨우 빠져나갈만한 교회에서 연결되는 비밀 통로.

이 굴은 지진 피해에도 외부로 노출되지 않았다.

 

 

 

 

어쨌든 이 비밀스런 수도원 은신처는

완성되고 약 백년 후 1283 년에 엄청난 규모의 지진이 일어나 말 그대로 도시를 박살내 버린다.

이때 도시의 3 분의 2 이상은 부서졌고 숨겨져 있던 동굴들이 밖으로 드러나게 된다.

 

 

 

 

그러나 지진 이후에도 이곳은 1290년 몽고군 침략을 잘 모면했고

꽤 오랫동안 수도원의 기능을 수행하였으나 1551년 페르시아와 연속된

오스만 제국의 공격으로 많이 훼손 되다가 급기야 1578 년쯤에는 완전히 버려진 도시가 된다.

그러다가 근래에 들어 조지아 정부의 적극적인 복구 작업과 연구, 홍보 등으로

드디어는 이제 조지아의 주요 관광지로 상당한 인기를 누리게 되었단다.

 

 

 

 

이곳 동굴들은 다양한 용도의 방들로 나뉜다. 예를 들면 식당에서부터

회의실, 휴게실, 은행, 성당, 도서관, 마구간, 제과점, 와인 셀러, 약국, 목욕탕 등 별 게 다 있다.

이곳은 '와인 저장고'.

 

 

 

 

회의실 ?

 

 

 

 

공동 식사를 위해 돌로 된 기다란 테이블이 있는 식당.

 

 

 

 

가장 기억에 남는 약국.

한의원의 약재를 보관하는 서랍장처럼 수많은 홈이 파인 동굴의 벽은

신기하다 못해 경이롭기까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