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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오키나와, 슈리성

by 조인스 자전거 2014. 12. 29.

슈리성(首里城)으로 오르는 언덕길.

나하시 중앙에 자리 잡은 이곳은 오키나와의 옛 왕국 류큐국의 왕성(王城)이다.

 

 

 

 

2차 대전 전에는 이 城의 정전(正殿)건물 등이 국보로 지정된 곳이었지만

오키나와 전투와 그 후의 류큐 대학 건설 등에 의해 모두 파괴되고

성벽이나 건물의 기초 등의 일부만 남아있었다.

 

 

 

 

슈리首里 왕성의 정문 수례문(守禮門).

류쿠왕이 중국 사신에게 사대의례를 지킨 현장으로 일본 돈 이천엔 지폐에 인쇄되어 있으며 또한 수리라는 말도

이 문의 이름에서 따 온 지명이라는 설이 있을 정도로 이름난 문이다.

 

 

 

 

성의 본격적인 복원은 1980년대 말부터 행해졌다는데

1992년 세이덴 등이 옛 유적을 묻어서 되돌리는 형태로 복원되었다.

2000년 12월, “구스쿠 유적 및 류큐국 유적”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지만,

등록은 “슈리성 터”(しゅりじょうあと)로, 복원된 건물이나 성벽은 세계유산이 아니란다.

 

 

 

 

슈리성(首里城)의 창건시대는 명확하지가 않으나

13세기말부터 14세기 다른 오키나와의 많은 다른 성과 같은 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본다.

 

 

 

 

슈리성(首里城)은 몇 번이나 소실된 기록을 갖고 있는데 현재의 모습은

세 번째의 화재에서 재건된 1715년에서 1945년까지의 모습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1879년의 오키나와 현 설치 이후 슈리성의 건물은 정부 소유물로서의 역할을 잃고

일본육군의 제6사단(능본)의 군영으로서, 그 후는 슈리시에 팔려 학교 따위의 건물로 이용되었다.

 

 

 

 

이후 슈리성(首里城)은 황폐해지고 노후화가 심하여 붕괴직전의 상태까지 되었다.

쇼와 초기(1928년~1933년)에 正殿의 개수공사가 행해지고 국보에 지정되어  오키나와 신사의 사당이 되기도 했으나

 

 

 

 

2차 대전 중 일본군이 이 성 아래에 총사령부를 두는 바람에 1945년 5월 미군의 함포사격을 받고 완전 소실되었다.

성 입구 옆에 있는 우물터.

 

 

 

 

당시 성과 마을 등, 류큐 국왕의 보물·문서를 포함한 많은 문화재가 파괴되었다.

더구나 전쟁 후 성 터에다 대학건물을 세우는 바람에 많은 유적이 헐리거나 묻혀버렸다.

이후 슈리성(首里城)의 재건은 오키나와 사람들의 소원이었다.

 

 

 

 

1958년 드디어 수례문(守禮門) 재건을 시작으로 엔카쿠 절문 등의 건물이 복원되고

1972년 오키나와의 일본 반환 후에는 성의 입구에 해당하는 회합문과 주위의 성곽이 재건된다.

 

 

 

 

1979년 이곳에 있던 류큐대학이 이전되자

1980년 슈리성 재건계획이 책정되어 본격적인 복원이 시작되었다.

 

 

 

 

 

1992년 드디어 正殿(세이덴)을 중심으로 하는 건물과 성곽이 재건되어

지금의 슈리성(首里城) 공원이 완성되었다.

 

 

 

 

현재는, 슈리성(首里城)을 중심으로 한 일대가 슈리성 공원으로 공개가 되고 있으며,

正殿(세이덴) 뒤쪽의 성곽이나 건축물들의 재건사업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

 

 

 

 

슈리성(首里城)은 외곽과 내곽으로 되어 있고, 뜰로 불리는 광장에는 세이덴(正殿)이 있고

북쪽 궁전과 남쪽 궁전 등의 건물은 성 내부에 집중되어 있다.

 

 

 

 

다른 일본의 성과는 달리 슈리성은 중국 城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문이나 각종 건축물은 옻나무로 주홍으로 칠이 되어 있고

기와지붕에는 초기는 고려기와 후에는 붉은 기와를 장식에는 국왕의 상징인 용을 많이 사용했다.

 

 

 

 

본래 이곳 슈리성은 전란이 없던 류큐국 시절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군사목적보다도 정치중심지로서의 역할을 강조해서 설계되어 있다.

성곽은 다른 구스쿠와 같이 류큐 석회암로 쌓아올렸다.

 

 

 

 

성의 전망대에서 바라본 나하시 남쪽 풍경.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슈리성 정전’(正殿)

본래의 목조 건축으로서 복원된 건물은 저 건물뿐이고 대부분의 부속건물은 시멘트로 만들었다 한다.

 

 

 

 

지금의 성벽은 옛 성벽 위에 새로 쌓았기 때문에 아래 일부만이 유일한 원래 슈리성의 흔적이라 볼 수 있다.

 

 

 

 

성 남쪽에는 ‘게오노우치’라 부르는 숲속의 성역이 있다고 하는데

슈리성의 발상지로 슈리성을 국가의 성지로 정하는 중요한 장소라고 한다.

 

 

 

 

이곳에서는 지금도 류큐 왕국 시절 지냈던 제사를 지낸다고 하는데

제사의 연구에 기초하여 왕궁의 정비공사가 계속 진행되고 있으나 자료 부족으로 복원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성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나하' 시 풍경.

류큐왕국의 흔적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  콘크리트 덩어리만 가득 들어찼다.

 

 

 

 

방공호 같은 슈리성 동쪽의 지하 주차장 입구. 그나마 오키나와가 옛 류큐 왕국이었음을 알려주는 유일한 곳.

류큐 왕국이 철저히 일본화 된 것은 우리에게 행했던 일제의 통치가 그대로 먹혀들었던 것임을

이곳에서 새삼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다. 무서운 일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