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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레바논, 티레 유적지

by 조인스 자전거 2012. 6. 7.

레바논 남부 해안가에 있는 티레(두로)는 페니키아시대 가장 큰 항구로서

이집트등과 교역했던 문화의 중심지였다. 이곳에는 로마의 유적지가 두 곳 있는데

관광 시작은 공동묘지(네크로폴리스)에서 시작했다.

 

 

 

 

공동묘지(네크로폴리스)는 로마와 비잔틴 시대 (AD 2세기부터 7세기까지)의 것이다.

이곳은 당시 부호들의 석관 수 백기가 무더기로 발견된 곳으로

세계에서 가장 크고 사치스런 로마 공동묘지(네크로폴리스)라고 한다.

칠성급 호텔 로비 바닥 같이 생생한 대리석 모자이크는 공동묘지 입구에 있는 교회바닥이다.

 

 

 

공동묘지(네크로폴리스)가 끝나는 곳에는 20m 높이의 개선문이 있고

문을 통과하면 로마의 전차경기장인 히포드롬(Hippodrome)이 나타난다.

개선문 뒤로 보이는 건물은 티레의 아파트 단지.

 

 

 

이 개선문은 로마 하드리안(Hadrian)황제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2세기 건축물이다.

당시 로마는 그들의 속주에 이 같은 개선문을 줄기차게 세워 그들의 힘을 과시했다.

 

 

 

개선문을 지나면 포장석이 깔린 일직선 열주 도로가 아파트와 연결된다.

고대와 현대의 엉거주춤한 동거다. 아파트에서 지금 막 나온 일가족이

로마의 전차들이 오갔던 도로를 오붓하게 걷는다.

 

 

 

개선문을 지나면 왼쪽으로 고대 로마의 거대한 전차경기장 히포드롬(Hippodrome)이 펼쳐진다.

이 경기장은 길이가 480m이고 폭이 160m. 3만 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었던

세계에서 가장 크고 잘 보전된 전차경기장이라고 한다.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있는 관중석에 올라서서 주변을 둘러봤다.

확 트인 전망이 시원한데 남쪽 저쪽으로 이십 여km 달려가면

적국 이스라엘 국경이 나오는 방향이다.

 

 

 

뒤로 돌아 바라본 반대방향 북쪽.

정면 중앙에 방금 지나온 개선문이 보이고 오른쪽 나무가 우거진 곳이 공동묘지다.

 

 

 

동쪽. 흰 건물은 유적지 관리소. 사방을 둘러봐도 풍경은 편안하고 주변은 조용한데

여기 레바논의 역사는 정말 파란만장하다.

 

 

 

아래로 내려와 다시 올려다본 히포드롬 관중석.

대한민국 공설운동장 관중석과 별다름이 없어 보인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오벨리스크를 가운데 두고 말마차가 트랙을 도는 벤허의 한 장면을 그려보니

F1경기를 여기서 하면 고대와 현대가 어울려 멋들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대단히 넓은 경기장이다.

 

 

 

관중석 뒤쪽이다. 이곳에는 상가 터인데 텅 빈 경기장과 다르게

이것저것 여기저기 기둥과 벽이 많이 남아 있다.

 

 

 

이천 년 동안 한 치의 일그러짐 없이 직선으로 통하는 시간의 문.

경기장을 찾은 당시 두로의 사람들이 보이는 듯하다. 구경꾼, 장사꾼, 소매치기까지.

 

 

 

티레에는 로마의 유적지가 두 곳에 있다. 이곳은 알 미나 (Al Mina)라 불리는 해안가 유적지다.

공동묘지와 전차 경기장이 있는 알 바스(Al-Bass)를 보고 다음으로 찾은 곳.

바닷가에 있어 시원한 경치도 같이 즐길 수 있는 곳이 되겠다.

 

 

 

고대 수영장이라고 하는데 이곳에서는 수구 경기가 열렸다고 한다.

지금도 물만 채우면 경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멀쩡한 곳이다.

이천 년 전 만든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모습이다.

 

 

 

이곳에도 역시 대리석 기둥이 많다. 무늬가 아름다운 대리석 기둥이 줄지어 선 황제를 위한 대로.

로마 유적은 어디를 가던 기둥으로 시작해서 기둥으로 끝나는 것 같다.

 

 

 

해안으로 나가면서 발굴된 옛 도시의 잔해들이 잡초사이로 어수선하다.

목욕탕, 공장, 상점 등의 터란다. 모두 이천년 가까이 된 것들이다.

 

 

 

이곳에는 특이하게 다른 곳에서 볼 수 없었던 부러진 석주가 유난히 많다.

누가 왜 꺾었는지 그 힘과 무지함에 기가 막혔다.

 

 

 

해안가에 있는 불가마처럼 생긴 구멍들.

누구는 유리공장 고로라 하고 누구는 목욕탕 아궁이라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찜질방 쑥탕 같다.

 

 

 

파란 하늘아래 천년 넘게 선 비잔틴 석주를 한참 바라보고 있자니

오늘따라 피지배자들의 억눌린 분노가 생각나고 갑자기 가슴이 울컥했다.

권력과 위엄과 지배와 굴종이 만들어낸 정복자의 기둥.

수천 년 지워지지 않는 정복의 대못이기도 하고

우리에게 부족한 반성의 촛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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