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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프로방스, 아를

by 조인스 자전거 2014. 6. 9.

'아를' 시내로 들어온 버스는 해가 막 넘어가는 ‘론’ 강가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아를'은 파리에서 내려온 '고흐'가 미술공동체를 만들어 보겠다고 꿈꾼 곳이기도 하지만

고갱과 동거하다 귀를 잘라버리는 최악의 시기를 보낸 곳이기도 하다.

'아를'에서는 '고흐'의 노란색을 많이 볼 수 있다.

 

 

 

'고흐'의 노란색 정신병원을 찾아가는 길.

'고호'는 '아를'로 이사 한 후 2년 반 동안 그의 예술혼을 최고로 불살랐다.

이곳에서 그가 그린 작품은 무려 200점이나 된다고 한다.

멀리 도로 끝으로 '아를'의 시청사 건물이 보인다.

 

 

 

고흐가 입원했던 16세기에 지었다는 정신병원건물 입구.

지금은 '고흐문화센터'로 이름을 바꿔 달았다.

 

 

 

고흐는 귀를 자르는 사건 후에 1889년 5월 이곳에서

귀의 상처와 환각 증세 치료를 받으며 지냈다.

정원에는 그가 여동생에게 보냈던 편지에서 묘사했던

꽃과 나무들이 여전히 자라고 있다.

 

 

 

1889년 4월 그가 여동생에게 쓴 편지는 이렇게 시작된다.

'그때 이후 마음이 많이 진정되었고 몸도 완쾌되었다.

새 화실을 마련하기에는 여전히 힘들지만 여기서 계속 그림을 그리고 있단다. (중략)'

 

 

 

'온통 하얀 회칠을 한 병원은 아랍식 건물에서 볼 수 있는 아치가 달린 회랑이 둘러 있고

가운데에 조그만 연못이 있는 꽃밭이 있단다.'

 

 

 

'꽃밭에는 물망초, 크리스마스 로즈, 아네모네, 개구리자리, 그리고 데이지가 가득하고

회랑 바로 아래편에는 오렌지나무와 유도화가 심어져있단다.

즉 꽃과 싱싱한 초록이 가득한 풍경이란다. (이하생략)

‘아를 병원의 안뜰’ 그림과 실제 안뜰.

 

 

 

이곳에서 치료를 받던 고흐는 다시 파리 근교 '오베르 쉬르 우아즈'로 올라가

다음해 1890년 7월 29일 37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햇빛에 바랜 고흐 그림을 담은 그림엽서들.

 

 

 

왼쪽이 정신병원 건물. 오토바이가 서있는 곳이 건물 출구다.

 

 

 

‘빈센트 반 고흐’ 이름이 붙은 거리 풍경.

고대 로마의 이천년 전 유적지 ‘아를’은 백여 년 전

천재화가 ‘고흐’의 흔적으로 더 유명하게 된 도시다.

 

 

 

‘라마르땡 광장’의 삼색기 휘날리는 ‘아를 시청사’.

아를에서 제일 높은 시계탑을 자랑한다.

 

 

 

그리고 ‘생트로핌 성당’ (Saint-Trophimes ).

아를의 고대 로마 유적지와 자웅을 겨루는 중세 대성당.

 

 

 

구시가지 한가운데 자리한 ‘라마르땡 광장’ 전경.

저 오벨리스크는 이천년 전 로마 황제가 이집트에서 갖고 온 거란다.

그 말을 들으니 이곳이 이탈리아인지 프랑스인지 잠시 어리둥절하다.

반 고흐가 잠시 세 들어 살던 노란집이 여기 광장 근처에 있었단다.

 

 

 

포룸 광장, 왼쪽이 ‘밤의 카페’ 그리고 정면이 ‘그랑호텔 노르피뉘스’.

그 옛날 피카소나 장 콕토가 아를에 오면 자주 묵었던 호텔이란다.

'아를'의 문화거리라 할 수 있다.

 

 

 

호텔 옆의 ‘밤의 카페’.

영화세트처럼 그렇게 고흐가 그린 그림과 똑같은 모습으로 지금도 영업 중이다.

고흐의 노란색 그림 앞에 그 모델인 노란색 건물이 오롯이 있으니

인생의 무상함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 변함없는 모습에 감탄하며 정면에서 다시 찍은 ‘밤의 카페’ 전경.

광장 주변에서 유일하게 온통 노란색을 칠한 건물이다.

 

 

 

저녁은 이 광장에서 했다.

골목을 꺾어 돌아 들어간 식당 건물 안뜰.

이곳 건물들은 대개가 골목에서 문 하나를 통과하면 이런 공간이 나타난다.

 

 

 

다음날 아침 호텔 창 너머 풍경. 앞으로는 ‘론’ 강이 흐르고 멀리 아를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아를은 고흐가 일 년여 광기어린 예술혼을 불태웠던 이전부터

로마 유적이 도시곳곳에 깔린 유서 깊은 역사 도시다.

 

 

 

정면 제일 높은 곳이 '생트로핌' 수도원 종탑,

그 왼쪽은 시청사 시계탑. '아를'은 알퐁스 도테의 ‘아를의 여인’, 비제의 ‘아를의 여인’,

고흐의 ‘아를의 여인’이란 같은 제목을 갖고 있는 글과 그림과 음악을 만들어낸

그야말로 이름값 하는 문화 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