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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아시아

스리랑카, 이스루무니 바위사원 (Isurumuni Rajamaha Viharaya)

by 조인스 자전거 2011. 3. 15.

기원전 3세기에 세웠다는 스리랑카 최초의 절 ‘이스루무니 바하라’.

오른쪽이 본당, 왼쪽은 박물관 그리고 그 뒤 바위언덕엔 작은 스투파가 있다.

 

 

 

‘아누라다푸라’ 신성 도시(Sacred City of Anuradhapura) 안에 자리한 사찰은

보리수 사원에서 남쪽으로 1km남짓 떨어진 평야지대에 솟은 바위에 굴을 파서 만들었다.

스리랑카에서 가장 유서 깊은 사찰이지만 우리나라에 비하면 대단히 규모가 작다

 

 

 

이곳에서 특히 눈여겨 볼 것이라고 소개하는 것 중 하나.

연못 가 바위에 새겨진 춤추는 코끼리의 부조가 눈에 띄는데 7세기경의 작품으로

스리랑카 불교미술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그러나 그보다 뭐하나 설명이 없는 조각상이지만 사찰 입구 난간에 조각된 그림이 더 눈길을 끈다.

그 자세가 영락없는 우리나라 금강역사상이다.

 

 

 

법당의 붉은 색으로 단장한 거대한 열반 와불상.

부처님은 저 자세로 80세에 열반에 드셨다고 전하는데 머리는 북쪽으로 얼굴은 서쪽을 보고 발은 저렇게 겹친 모습이다.

 

 

 

법당 안도 소박하지만 공양물은 더 그렇다. 스리랑카에서는 공양을 꽃으로 한다고 한다.

재스민 꽃 몇 송이가 유난히 희다.

 

 

 

스리랑카는 BC 245년에 인도의 아소카왕이 두 차례나

왕자 '마헨드라'(Mahendra)와 딸 '산가미트라'(Sanghamitra)를 파견해 포교한 나라로

지금은 상좌부 불교의 종주국이 되었다.

 

 

 

상좌부 불교는 석가모니가 사용한 언어인 '팔리어'로 된 경전을 근간으로 하며,

부처의 말씀을 근거로 스스로의 수행을 통한 개인의 해탈을 강조한다.

이는 중생들의 교화와 타인을 위한 선행이라는 보살중심의 우리 불교와 큰 차이가 있다.

 

 

 

‘마힌다 장로’와 수행자들의 좌상.

상좌부 불교의 전통을 잘 보존하는 스리랑카는 헌법에서도「불교에 최우선의 지위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에

섬 전체가 불교적 세계관이 지배한다고 보아야 한단다. 스리랑카 사찰은 완전 독립되었으며,

중앙 정부의 어떠한 부서도 없다. - [네이버 지식백과] 중에서

 

 

 

안쪽에서 바라본 동굴사원 입구 쪽. 내부가 생각보다는 작고 또한 별다른 장식도 없다.

 

 

 

 

법당에서 나왔다. 작은 규모지만 바위 위의 흰 불탑(다고바)이 아름답다.

오른쪽은 이 지역에서 발굴된 유물들을 전시한 박물관.

 

 

 

부속 박물관에는 이 지역에서 발굴된 소소한 유물들이 있다.

그중에서 가장 이름난 유물중의 하나인 석부조상 ‘왕의 가족들’

왼쪽은 왕비와 시녀 오른쪽은 ‘두투가마니’ 왕의 아들과 애인이라고 한다.

그 구도나 묘사가 요즘 것보다 더 세련되어 보이는데 내용도 그렇다.

 

 

 

이 부조상의 제목은 ‘연인들’인데 이 커플이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그러니까 세자가 왕위를 포기하고 여인과 결혼해 행복하게 산 그런 이야기다.

5세기 작품으로 사원 북쪽 왕궁 터에서 발견했다고 한다.

 

 

 

이 정사에는 특이하게 바위 위에 전망대가 있다. 그리 높지는 않으나 주변이 평야지대라 조망이 괜찮다.

전망대로 오르는 바위에 낙서 같은 글자들이 요란하다만 뭔 뜻인지는 아직도 모르고 있다.

 

 

 

바위 위 전망대에서 본 풍경. 뒤가 ‘티사웨바’ 호수, 앞이 동쪽으로 ‘아누라다푸라’ 시내가 펼쳐진다.

 

 

 

사찰 밖으로 나왔다. 우산 안에서 내다보는 스리랑카는 온통 초록이다.

빗속을 맨발로 사찰의 안팎을 누볐으나 오히려 더 편안하다.

 

 

 

불기는 부처님이 돌아가신 날부터 시작된다고 하는데 올해는 불기 2561년이 된다.

스리랑카의 불교는 붓다를 따라 부처가 되기 위해 공부하는 삶을 쫓는다.

허나 부처님 이래로 아직 스스로 부처가 되었다는 불자는 없다.

그래 중생의 삶이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려니 하니 오늘도 또 좋은 봄날이 가고 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