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성한 가을은 무에서도 볼 수 있다. 올 해 유난히 풍작을 이룬 무 배추 덕에
처가 쪽 시집 장가간 자식들이 모여 김장을 했다.
무 채 써는 일은 늘 내가 맡는데 이 기술은 타고 났는지 세월이 흘러도 도무지 변할 줄을 모른다.
순식간에 산산 조각나 들어 누운 무채에 명품 고춧가루를 쏟아 붓자
힘 센 처남이 양 손으로 버무리기 시작했다.
고춧가루는 오직 무채에 섞이기 위해 존재하는가 싶을 정도로 둘의 만남은 참으로 감격적이다.
이어 사방에서 다소곳이 대기하던 각종양념이 들어서는데 파, 마늘은 물론
소래 산. 잘 삭은 새우 젖이랑
싱싱한 생 새우등의 양념을 곁들이고
김장을 총괄하는 처남댁이 쓱쓱 썩썩 버무림을 계속하는데
마지막으로 장모님처럼 오래된 매실 액을 팔순 당신께서 아낌없이 들이붓자
기능공들의 능숙한 손놀림은 바빠졌다.
그렇게 잠시 시간이 흐르자 다양한 양념으로 범벅된 김장속이 완성되었다.
이어지는 시식 시간. 올 채장아찌는 약간 싱거운 것으로 판명 났다.
허나 저염도 식사로 바꾸자는 사회적 여론에 따라 공정은 계속 그대로 진행되었으니
뉴욕 유엔 본부와 관련된 절임배추가 등장하는데 그 포장 광고 문구 한 번 기발하다.
아무튼 유엔사무총장 이름 덕분인지 유난히 노랗고 하얗고 뭔가 글로벌한 배추는
붉은 바다에 몸을 던져 몸부림치는데 넓고 흰 배춧잎과 가늘고 빨간 채장아찌의 어울림이란.
천지 음양의 조화가 다 여기에 있는 듯 그 부딪침은 가히 환상적이다.
이어 피어난 코리아 가을 김장의 꽃. 마누라 손으로 돌돌 만 요놈. 남자가 사는 맛.
처가 거실 한 쪽 구석에 앉아 열심히 일하는 중늙은이 사위.
쌈 하나 받아먹고 좋다고 미소 짓는 그 모습이
어째 벌써 푹 익어버린 김치 형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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