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일월 스리랑카 여행 중 들린 스리랑카 차 농장.

년이 지났지만 사진을 정리하다보면 지난 일이 어제처럼 되살아난다.

실론티로 유명한 맥우드 차 농장은 '콜롬보' 동쪽 스리랑카 중앙산지의 '페드로산' 기슭에 있다.

 

 

 

 

'누와라엘리야' 지역에는 식민지 시절 영국인이 만든 차 농장이 여러 곳 있는데

이곳은 그 중 하나로 '맥우드'라는 영국 선장이 1841년 설립했다고 한다.

그러니 역사가 200년 가까이 되는 식민지 시절의 현장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이 다 영국인처럼 보인다.

식민지 시대를 겪은 우리로서는 이 모든 것들이 예사롭지 않다.

 

 

 

 

계곡 중간지점에 위치한 농장 마당에서 보이는 풍경.

사방이 차밭인데 그 사이사이 판자집 모양의 현지인들의 가옥이 보인다.

스리랑카는 총 칼을 든 식민지배에서 모양만 달라졌지 아직도 막강한 서양 자본의 지배를 받고 있다 한다.

 

 

 

 

스리랑카 중심부의 고원지대인 이곳 '누와라엘리야' 지역은 한마디로 전체가 거대한 차 공장이다.

밀림지역이었던 이곳을 개간한 사람들은 대부분 인도 남부에서 바다를 넘어온 '타밀'인들이란다.

그들은 영국인들의 손에 의해 노동자로 이곳으로 와 지금까지 대부분 차 잎을 따며 살아가고 있다.

 

 

 

 

농장 마당 데크에서 내려다본 계곡.

개울로 내려가는 길을 서양 자본과 기술이 잘 만들어 놨다.

계곡 경사면은 깡그리 다 차나무다.

 

 

 

 

계곡으로 내려가 올려다본 하늘.

초록 찻잎 위로 하늘이 파랗고 무심한 흰 구름이 지나간다.

문득 내가 찻잎 따는 노동자가 되어 허리를 펴고 하늘을 본다.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 한 복판에 섰다.

 

 

 

 

찻잎 따는 일꾼들이 수없이 다니는 좁은 황토길.

이곳은 사계절 차를 수확할 수 있는 기후이다 보니 한 달에 많으면 네 번이나 찻잎을 딴다고 한다.

 

 

 

 

조금 더 내려가 위를 보니 바로 전 내가 섰던 데크가 보인다.

없는 자들이 올려다본 가진 자들의 삶의 모습이 아닐까 하니 다리에서 힘이 빠진다.

 

 

 

 

 

 

해가 높이 떴다.

계곡 깊은 곳에도 햇살은 내려온다.

맑은 공기가 폐부 깊숙이 들어온다.

 

 

 

 

이곳에서는 사방을 둘러봐도 온통 차밭이다.

저 혼자 심심한 길이 차밭사이로 구불구불 지나간다.

 

 

 

 

길을 따라 위로 올라왔다.

농장 입구쪽 구곡양장 도로가 얼마나 깨끗한지 먼지 하나 없다.

가끔씩 ‘쌩’ 차가 지난다.

 

 

 

 

고개를 드니 빨간색 버스 하나가 산허리를 타고 고개를 넘는다.

우리도 저 도로를 타고 이 고개를 넘을 참이다.

 

 

 

 

차 공장에 들어서서 정신을 차리고 마당을 둘러보니 루돌프가 보인다.

한 무리 서양 사람들이 낄낄대며 순록을 잡고 장난을 친다.

그사람들 하는 짓도 매우 도전적이다.

 

 

 

 

마누라에게 한번 해보라 하니 벌써 자세가 남다르다.

자연에 순응하는 동양인의 모습이다.

 

 

 

 

공장 구경을 하고 떠날 즈음 찻잎을 가득 실을 트랙터가 공장 앞에 섰다.

일꾼들이 차에서 내리더니 잠시 뒤 층층이 쌓인 자루가 계단을 오른다.

식민주의 시대는 끝났다고는 하나 서양 자본의 위세는 식민시대와 별 다름이 없다.  

아무려나 차는 이곳 스리랑카에서 보석과 함께 가장 중요한 수출품목이란다.

 

 

 

 

 

'서아시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인도, 마하발리푸람  (0) 2012.10.01
인도, '사르나트(녹야원)'  (0) 2012.09.12
중국, 사천성 황룡 가는 길  (0) 2012.08.21
터키, 에베소 유적지  (0) 2012.04.05
터키, 데린구유 지하마을  (0) 2012.03.20

작년에 다녀온 남인도 사진을 유적지별로 정리했다.

‘마하발리푸람’은 첸나이에서 65Km 정도 떨어진 바닷가 마을로

 

 

 

바닷가에 널린 바위를 통째로 깨고 다듬어 세운

힌두사원과 다양한 석조물로 유명한 곳이다.

 

 

 

 

‘마하발리푸람’은 남인도' Pallava 왕조'(AD 3세기 ~ 9세기)의 수도로

'뱅골 만'으로 향한 잘나가던 항구도시였다.

 

 

 

 

현재 이 도시에는 크게 세 곳의 유적지가 있는데

이곳은 그 중 하나인 'Five Rathas' 이다.

 

 

 

 

사원에는 크고 작은 다섯 개의 바위를 통째로 깎아 만든 조형물들이 있는데

이 기념물들은 모두 시바의 사원으로 벽면에는 아직도 생생한 모습의 힌두신들이 숨 쉬고 있다.

 

 

 

 

이곳의 석조물들은 전해오는 말로 오백 명의 석공들이 삼십여 년 동안 만들었다고 하는데

절대자에 대한 깊은 신앙심은 물론이고 그 아름다운 예술성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다른곳과 달리 현지 관광객이 많아 놀랐는데

 

 

 

 

사원을 찾은 인도 할머니와 함께 앉아 모르는 말을 서로 나누다가

사진까지 찍는 모습을 보니 이곳의 기가 세기는 센 모양이다.

 

 

 

 

'화이브 라타' 유적지와 가까운 거리에 있는 ‘해변사원’.

이곳에 있는 석조물도 '화이브 라타'처럼 모두 바위를 깎아 만든 것으로

천년이 넘은 세월을 모래위에 버티고 섰다.

 

 

 

 

 

엉터리 건물을 지칭하는 사상누각이란 말을 이곳에서만큼은 쓸 수가 없는 것이

이 지역에 자주 발생하는 뱅골만 쓰나미도 이곳만큼은 어찌해보지를 못했단다.

많은 시바의 난디 돌조각상이 포위하듯 신전을 둘러싸고 있는데

시바의 영광을 묘사한 수많은 부조물이 바닷물과 바람에 씻겨 지워지고 있는 현장이다.

 

 

 

 

이곳의 힌두 신전은 원래 7채가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지금 이 건물을 제외한 나머지 6채는 아직도 가까운 바다 속에 잠겨있단다.

지금도 배를 타고 조금만 나가면 물속의 잠긴 사원의 윗부분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그래서 더 신비한 사원이 되겠다.

 

 

 

 

시내 중심가 야트막한 바위 언덕에 있는 등대.

이 등대를 중심으로 석조사원과 돌조각 유적지가 언덕에 산재했다.

 

 

 

 

그 중에 가장 유명한 ‘아르주나의 고행’(Arjuna's Penance) 부조.

 ‘마말라뿌람’의 랜드 마크로 육천년 전부터 전해 내려온다는 인도의 대 서사시

‘마하바라타’속의 인물 아르주나의 고행을 바위에 새긴 곳이다.

 

 

 

 

바위벽에 새긴 신비한 그림 중 암벽 중앙의 굴곡진 곳에 새겨진

‘갠지스강의 하강’이라는 특별한 이름을 갖고 있는 부조.

힌두교 신화에서 하늘 위를 흐르던 갠지스 강이 수행자의 고행으로

땅으로 내려와 대지를 흐르는 장면을 묘사했다.

 

 

 

 

‘마말라뿌람’에서 연말연시면 늘 개최된다는 ‘마말라뿌람 무용축제’는 '아르주나 고행' 바위를 배경으로 열린다.

 아르주나의 고행 암벽 앞에 설치 중인 페스티벌 간이무대 공연장.

 

 

 

 

 

등대 주변에 산재한 바윗돌 힌두 사원 중 하나.

 

 

 

 

그리고 그 옆의 ‘크리슈나 버터볼’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돌덩이.

이 돌도 딱 보니 신전감인데 어째 그대로 남겨 놓았다.

 

 

 

 

엄청나게 많은 신과 그 신들의 대하드라마를 끝도 없이 만든 인도 사람들.

이상하게도 요상한 이 돌에는 아무런 이야기를 만들지 않았단다.

우리의 생각을 늘 뒤집어 놓는 거대한 인도.  

 

 

'서아시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리랑카, 맥우드 실론티 공장  (0) 2012.10.04
인도, '사르나트(녹야원)'  (0) 2012.09.12
중국, 사천성 황룡 가는 길  (0) 2012.08.21
터키, 에베소 유적지  (0) 2012.04.05
터키, 데린구유 지하마을  (0) 2012.03.20

불교의 성지 ‘녹야원’.

인도 바라나시에서 북쪽으로 약 한 시간 거리인 이곳은 여기서는‘사르나트’라 부르는데

인도에 있는 불교 4대 성지 중 하나다.

 

 

 

 

석가모니는 깨달음을 이룬 뒤 이곳에서 처음으로 제자들에게 설법하셨다고 전해 온다.

입구에 들어서자 시야가 확 트이는데 아이 하나가 화단 가에서 뜬금없는 연을 날린다.

지금 생각해 보니 바르나시의 연 축제가 끝나고 얼마 되지 않은 때라 그런 듯하다.

 

 

 

 

'녹야원' 뜰에 들어서자 모든 이의 시선을 끄는 것은 거대한 다메크 탑이였는데

그 옆 번쩍이는 황금 탑이 더 궁금해 보였다. 알고 보니 '자인교' 탑이다.

불교 최고 성지에 떡하니 자기들 사원 탑을 세웠다.

과연 인도는 자비가 넘치는 곳이다.

 

 

 

 

안으로 더 들어가자 이곳 '녹야원'에서 제일 큰 건물 ‘다메크’탑이 모습을 드러내는데 엄청난 크기다. 

‘사르나트’ 불교 유적지는 기원전 최초로 인도를 통일한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왕이

불교성지로 세운 곳이다.

 

 

 

 

건설 당시의 ‘사르나트’는 황금불상이 있고 수천 명의 사람이 수행하는 큰 곳이었다고 하는데

인도의 세월이 흘러 결국 힌두교와 이슬람교에게 자리를 내주면서 폐허가 되었고

지금은 저 2층 ‘다메크’탑과 부러진 ‘아소카’왕의 석주 만이 남았다.

 

 

 

 

이곳의 건축물들은 대개가 붉을 벽돌을 이용해 만들었다.

그 모양과 색깔이 얼마나 친근한지 우리가 죽어 흙이 되고 다시 벽돌이 되고

다시 부서져 흙으로 돌아가는 윤회의 교의를 은연중에 보여준다.

 

 

 

 

상부가 잘려나간 채 남아있는 ‘아소카’왕이 세웠다는 석주.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왕은 인도 여러 곳에 비문이 새겨진 석주를 세웠다.

수천 년 전 세워진 석주의 부러진 단면이 얼마나 깨끗한지 비문 내용보다도

부러진 연유가 더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신비한 기둥이다.

 

 

 

 

 

'녹야원' 중심부에 있는 ‘근본여래향실’.

부처님이 이곳에서 제자들에게 최초 설법을 하며 거처하셨던 곳으로 터만 남았다.

불교의 성지 중의 성지가 아직도 폐허로 놓여있는 현장을 목도하니

우리나라 번쩍이는 사찰들과 대비되어 울컥했다.

 

 

 

 

벽돌 기둥에 여기저기 누군가 붙여놓은 번쩍이는 금박지들이 바람에 나풀거린다.

그 화려한 빛깔보다는 바람에 날리는 얄팍한 두께가 세상 사람들의 염치없는 속을 보여준다.



 

 

 

가까이서 본 ‘다메크' 탑의 상층부.

무수히 쌓인 벽돌들을 보고 있노라니 중생들이 평생 지니고 사는 업보가

저렇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메크 탑' 아래 한쪽 구석에서‘피식’ 촛불이 꺼지며 연기가 한 줄기 피었다 사라진다.

自他가 둘이 아니니 머무름 없이 누구에게나 자비를 실천하자는 것이 ‘緣起說’이다.

그 연기가 이 연기임이 새삼 신기했다.

 

 

 

 

'녹야원' 뜰에서 발견한 크게 자란 '꽃기린'. 그 생김새가 오늘은 딱 중생의 번뇌 같다.

이미 겪은 것들에 얽매이고 또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를 늘 걱정하는 가엾고 어리석은 우리들이다.

 



 

'녹야원’ 마당 한구석에서 등을 보이고 앉은 스님. 모습 자체만으로도 고민에 쌓인 형상이다.

인도에 오니 이곳뿐 아니라  어디서건 마주하는 모든 풍경들이

불교의 기원이 왜 인도였음을 상시 보여준다.

 

 

 

'서아시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리랑카, 맥우드 실론티 공장  (0) 2012.10.04
남인도, 마하발리푸람  (0) 2012.10.01
중국, 사천성 황룡 가는 길  (0) 2012.08.21
터키, 에베소 유적지  (0) 2012.04.05
터키, 데린구유 지하마을  (0) 2012.03.2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