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무렵 오랜만에 친구들과 남산 둘레길을 걸었다.
장충단 공원 입구에서 본 한옥 카페 ‘다담에뜰’ 과 ‘신라호텔’. 과거와 현재가 잘 어울린 한 폭의 그림이다.
하늘에는 새떼가 그림을 그린다.
푸른 오월에 무슨 기러기인가 했더니만 자세히 보니 지난번 한강에서 본 민물가마우지다.
세상에 이렇게 변한 것도 있다.
학교와는 상관없는 이준 열사상이 대학 건물을 배경으로 지나는 우리를 바라본다.
이곳 장충단이 본래 을미사변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곳인지라
주변에 항일운동과 관련된 사람들의 동상과 기념비가 많다.
그리고 보니 외솔 최현배선생비도 산책로 입구에 섰다.
남산 기슭 동서남북에 있는 순국선열의 동상이나 기념비가 모두 동상이 열 개,
기념비는 열한 개나 된단다.
서울 남산은 조선 수도의 심장과 같은 산이지만 공교롭게도 임진왜란 때는 조선을 침략한 왜군의 주둔지였다.
그래 이곳에 오면 늘 가슴 한구석이 아프다. 역사와 상관없이 때죽나무꽃이 만개했다.
산책로 데크 바깥쪽으로 국수나무도 꽃을 활짝 피웠다.
난간을 삼각대삼아 숨을 멈추고 잘 찍었지만 역시나 흔들렸다.
찍은 사진을 보면 그 흔들림이 세월이 갈수록 심해진다.
‘장충단 공원’을 가로질러 올라가 남산 둘레길에 들어섰다. 왼쪽이 한남동, 오른쪽이 명동으로 가는 길이다.
그제서야 배호의 노래가 입속에서 맴돈다.
산책로 길에 만들어 놓은 전망대에서 잠시 머물렀다. 인생의 뒤안길에서 서성거리는 모습이 이런 걸까
만나기만 하면 옛날얘기가 산을 이룬다.
제각기 자신의 역사를 풍경 속에서 찾아내는데 빌딩들은 아무 말이 없다.
삼각산을 이곳에서 보니 보현봉을 기준으로 정확히 대칭을 이룬다.
남산 타워가 산꼭대기에 우뚝 하지만 우리 눈앞에는 연초록 신록만이 가득하다.
빨간 시과(翅果)가 주렁주렁 열린 단풍나무.
이파리만으로도 충분한데 예쁜 열매까지 매달고 저리 즐겁다.
조금 걸었다고 벌써 배가 출출해 와 산책로 길을 벗어나 다시 장충동으로 향했다.
산책로 입구에서 만난 멋진 건물. 이름표를 보니 ‘구립 노인 요양센터’다.
속은 모르겠으나 일단 겉모습이 멋지다. 요양원이라도 이렇게 잘 만들어 놓으면 서로 들어오겠다고 하겠다.
내려오다 외관이 멋진 모텔을 하나 만났다.
인터넷에서 본 우리나라에 유난히 모텔이 많은 이유가 떠올랐다.
부모와 함께 사는 우리나라 청춘 남녀는 어디 갈 곳이 없어서란다.
주변에서 가장 삐까번쩍한 CJ제일제당 본사 건물. 우리에게 팝콘과 영화를 동시에 제공하는 굴지의 회사.
피는 못 속여 그럴까 파랑 일색의 빌딩 외관에서 삼성 냄새가 난다.
오토바이 거리를 지나 광희동사거리에서 우회전 했다.
월요일 일곱 시가 넘은 교차로가 매우 한가하다.
건축가 김수근의 걸작으로 유명한 경동교회. 담쟁이덩굴에다 가로수까지 그 몸체를 숨겨서 볼 수가 없다.
생각 같아서는 모두 확 걷어내고 싶지만 하느님의 생각은 늘 알 수가 없다.
장충동 원조 족발 대짜리 하나를 시켰다. 거의 십 여 년 만에 다시 와서 먹는데 그 기분이 묘하다.
사실 이런 곳은 맛보다는 한 순간 재미로 와서 먹는다.
족발을 먹었으니 냉면도 먹어야 한다며 맞은편 평양 냉면집으로 또 들어갔다.
냉면은 옛날 그 맛인데 장삿속은 첨단을 걷는 집이다. 늦은 시간이지만 손님들로 바글거린다.
너무 배가 불러 두툼한 평양 만두는 싸들고 나왔다.
밤은 이미 깊었는데 먼 길을 가야하는 용구가 부지런히 앞장선다.
다른 친구와 달리 멀리 사는 바람에 이럴 땐 맘이 좀 짠하다.
인생이 결국 그렇다지만 특히 깊은 밤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대개가 혼자다.
그렇다면 저 분은 외로울까 고독할까 아니면 쓸쓸할까. 나 혼자 심심하니 별 생각을 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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