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날 김포 문수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강화읍.
고려 왕조는 1232년(고종 19) 몽골에 대항하기 위해
도읍지를 이웃한 개성에서 이곳으로 수도를 옮긴다.
이후 이곳은 고려가 개경(開京)으로 환도하기까지 38년간 임시피난수도가 된다.
정면의 산이 강화의 진산 ‘고려산’(436m).
강화읍 북쪽 풍경으로 정면 중경으로 보이는 산이 ‘북산’(140m).
천도 당시 이 산을 ‘송악산’으로 부르며 천도의 슬픔을 달랬다고 한다.
뒤쪽 멀리 높은 산은 창후리에 있는 ‘별립산’(416m)
강화도 북단 풍경.
정면이 동쪽에서 내려온 '한강'과 북쪽에서 내려온 '예성강'이 만나는 곳으로 '강화만'으로 부른다.
멀리 가운데로 ‘강화평화전망대’가 살짝 보인다.
강화도 북단 쪽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강 건너 마을에서 피난 온 사람들이란다.
전쟁 끝나면 곧 돌아가겠지 했다는데 현재 육 십 째 못 가고 있단다.
강화읍의 관문 풍물시장 쪽. 휴일을 맞아 들어오는 도로는 완전 주차장이다.
저녁 무렵이 되면 반대 현상이 일어난다. 늘.
오른쪽 '고려산'(436m)과 왼쪽 '혈구산'(460m) 그사이 너머가 '외포리',
'남산'(225m)능선을 타고 올라간 '강화산성' 그 정상에 '남장대'가 있다.
무더위에 잘 익은 벼가 벌써 노란색을 띈다. 앞쪽 강화대교 바로 왼쪽이 '갑곶진'이다.
'갑곶진' 왼쪽 해안도로를 타고 잠깐 가면 나타나는 ‘더리미’.
강화 유명한 장어집이 이곳에 다 몰려 있다.
'더리미 포구'와 장어 거리.
‘갑곶진’에서 시작된 해안도로는 계속 남쪽으로 향한다.
정면의 산이 비스듬하게 생긴 ‘진강산’이고
앞쪽은 김포 ‘포내리’ 낚시터.
멀리 보이는 산이 강화도 남단의 '마리산'.
앞쪽 산줄기가 잘려 나간 곳이 ‘김포 씨사이드 CC’.
드라이버가 맞지 않아 얼마나 고생했는지 저곳만 보면 슬라이스 생각이 난다.
정면 먼 산은 '전등사'가 있는 ‘정족산’.
산줄기를 도려내고 지은 클럽 하우스.
보통 하우스 너머에서 바다를 보고 티업 한다.
'더리미' 포구 앞 풍경. '염하'와 새우잡이 어선들.
‘혈구산’. 혈구(穴口)란 고구려 시대 강화를 부르던 옛 지명이다.
즉 한강을 내륙으로 들어가는 구멍으로 간주하여 그 입구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 네이버 지시백과
왼쪽 '혈구산'과 오른쪽 '고려산' 능선 사이의 ‘고비고개’.
그 너머로 ‘석모도’ 남단이 살짝 보인다.
강화 구교와 '강화대교'.
강화에 다리가 없던 시절 버스를 탄 채 N보트에 실려
강화 해협을 넘어 전등사로 수학여행 다녀온 기억이 난다.
생각해 보니 그리 먼 시절도 아닌 듯싶다.
강화 남단 쪽 풍경.
'초지대교'와 그 너머 '영종도'. 왼쪽으로 '인천대교'도 보인다.
대기는 맑고 공기는 시원하고 오랜만에 눈이 호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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