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갑자기 떠나야 제맛이 난다. 남도 섬진강가 어딘지 모르는 곳에서 차를 세우고 봄을 찍었다.
풍경은 머리를 지나 가슴속 깊이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강쪽으로 몸을 돌리니 커다란 섬진강이 하얗다. 센 바람이 불어오지만 봄바람이다.
바람에 들썩이는 모자를 누르며 고개를 숙이니 연초록 찔레순들이 반짝거린다.
오랜만에 본 '섬진강'이 예전보다 넓고 깊어진 느낌이 들었다. 세파에 찌든 내 맘때문인가 하니 슬펐다.
강물에서 우르르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강기슭 아래로 내려섰다. 강물에 부딪힌 햇살들이 눈 앞에서 하얗게 부서졌다.
앙증맞은 버들개지 하나 둘 셋 넷 가지마다 매달렸다.
그 자리에서 본 하류 쪽. 햇빛을 품은 은빛 모래가 강물처럼 뻗었다.
강 너머 풍경.
산비탈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뽀얀 봄기운이 내려오네.
남쪽으로 향하는 길가 양쪽으로 왕벚나무가 사람처럼 도열했다.
둥치마다 물오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남해대교를 건너는데 난간 양쪽에 태극기가 휘날렸다.
괜히 으쓱했다.
드디어 남해 섬 끝에 섰다. 해가 막 지고있었다.
멀리 떠난 곳에서 맞는 저녁은 언제나 맬랑꼬리하다.
남해 끝쯤에 자리한 '힐튼 리조트'. 건물은 주변 풍경과 어울리지 않지만 그 속 사람들은 모두 좋았다.
욕조에 앉아 바다를 보며 도로 위에서 보낸 하루를 씻어냈다.
피로는 물러가고 또다시 봄이 밀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