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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리투아니아, 샤울레이 십자가 언덕

by 조인스 자전거 2012. 6. 24.

나는 섬뜩한 느낌을 누르며 그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멀리서 전경(全景)을 찍은 듯 웅크린 고슴도치의 등 같은 야산 등성이에

가시처럼 보이는 것이 크고 작은 십자가라는 것을 겨우 알아볼 수 있을 뿐,

그곳이 어디이며 어찌하여 그런 곳이 생겨난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는 단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한참이나 그 사진을 가로 세로로 돌려보며 뒷면까지 뒤집어 보았으나

더 찾아낸 것은 사진 오른쪽에 작은 숫자로 찍혀 있는

‘1994. 5. 15’라는 촬영일자가 고작이었다.

 

 

 

마침내 그 사진에서 무얼 더 찾기를 단념한 나는

그 사진이 들어있던 비닐 봉투에 기대를 걸고 남은 사진을 방바닥에 한꺼번에 쏟아보았다.

그러자 별로 애쓸 필요도 없이 그 사진과 이어진 것임에 틀림없는 사진 석 장이 더 나왔다.

 

 

 

한 장은 그 산의 전경이라도 바짝 다가가 찍은 것이라,

그 산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알아볼 수 있게 해주는 사진이었다.

 

 

 

입구에서 산등성이로 올라가는 길이 판자로 덮여 다듬어져 있는 것으로 미루어

그 산은 인공으로 조성된 십자가 숲이지만

무덤이나 다른 기념물이 더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다른 사진 두 장은 각기 다른 곳에서 근접하여 찍어 부분적으로 확대한 것으로,

그중 하나는 등신대(等身大)보다 훨씬 커 보이는 십자가 고상(苦像)을 중심으로

대밭처럼 솟은 크고 작은 십자가들이 선명하게 드러나 보였다.

 

 

 

장석까지 박은 전봇대만 한 십자가에서,

나무젓가락을 십자로 묶어 꽂아둔 것처럼 희고 가늘어 애처로워 보이기까지 하는 십자가까지

땅바닥이 보이지 않을 만큼 산등성이를 뒤덮고 있는 광경이

한 번 더 사람의 가슴을 섬뜩하게 하였다.

 

 

 

 

다른 하나는 로자리오(묵주)를 감아 쥔 등신대의 성모상을 중심으로 꽂혀있는

또 다른 크고 작은 십자가들인데 그 삼립(森立)이 그걸 세운 사람들의 애절한 염원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듯했다.

 

 

 

 

이어진 석 장의 사진을 더 살피자

비로소 나는 그 사진들이 보여주고 있는 십자가 동산의 성격을 짐작할 것 같았다.

무언가를 절실하게 염원하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조성된 십자가 숲.

그러나 그게 어디에 있는 것이며, 어째서 그 사진이

그 비닐 봉투 속에 석 장씩이나 더 끼어있게 되었는지는 영 알 수가 없었다.

 

 

 

 

그 바람에 나는 다시 그 석 장의 사진을 이리저리 뒤집으며 꼼꼼히 살피게 되었는데,

거기서 비로소 그 십자가 언덕으로 다가가는 첫 단서를 찾을 수 있었다.

다른 두 장보다 크기가 배나 되는 십자가 고상의 사진 뒷면에 흘려 쓴 영어 두 마디였다.

 

 

 

 

십자가들의 언덕(Hill of Crosses), 샤울레이(Siauliai)’.

 

 

 

 

서명은 없었으나 눈에 익은 별난 필체가 보낸 이를 퍼뜩 짐작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그 짐작이 다시 오래 잊고 있었던 어떤 목소리를 떠올리게 했다.

 

 

 

 

“잘 들어맞는 비유가 될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서민대중의 애절한 염원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저들의 십자가 언덕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서낭당 돌무더기 같은 것이라고 보면 될 거예요.

 

 

 

듣기로 그 언덕에 처음 십자가가 세워지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반

저 나라 사람들이 폴란드 독립운동에 호응해서 일으켰던 반(反)러시아 민중봉기 이후라더군요.

그때 러시아군에게 학살되었거나 시베리아로 끌려간 사람들을 애도하고 무사한 귀환을 빌며 

십자가와 성상을 세우기 시작하였다는 거예요.

 

 

 

 

그러다가 1918년 독립전쟁 때 다시 독립의 염원을 빌고 희생자를 애도하는 십자가들이 더해졌고,

1920년대 마침내 독립을 성취하게 되면서 민족의 성지처럼 되었다고 해요.

하지만 2차 대전이 끝날 때 그 나라를 다시 병합한 소련은

그 십자가들의 언덕을 없애버리려고 갖은 수를 다 썼다더군요.

 

 



그 언덕에 불을 지르기도 하고 중장비로 십자가들을 밀어버린 적도 있으나 

누군가에 의해 다시 십자가들이 세워져 오늘에 이르게 되었는데,

91년 저들이 소련에서 독립하면서부터는 국가가 성역화 작업을 주도하기도 했대요.

 

 

 

 

요즘은 그 나라 사람이 아닌 관광객들까지 십자가를 꽂거나 걸어

머지않아 거기 있는 십자가가 백만 개를 넘어설 거라는 말도 있어요.”

 

 

 

 

그러나 이어 내 눈앞에 떠오른 그 목소리의 임자는

그녀를 마지막으로 본 90년대 말의 성숙한 여인이 아니라,

30년의 아득한 세월 저쪽 갈색 눈에 금발머리를 땋아 내린 이국 소녀였다.

 

 

 

이문열 [리투아니아 여인] 프롤로그를 그대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