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 길의 시작은 '서울 시립미술관'이다.
미술관에 오면 조용해서 좋다.
정동 길도 그렇다.
서울 시립 미술관에서 볼일을 보고 계단 앞에서 잠시 뒤돌아 본 풍경.
고갱전 플랜카드 앞으로 지나는 젊은 커플들이 건강해 보인다.
이곳은 옛 가정법원 건물로 여기서 드디어 이혼한 부부들이
이 길을 따라 덕수궁 쪽으로 내려가 각자 갈 길로 갔기에
연인들이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면 헤어진다는 무시무시한 속설이 만들어졌단다.
미술관 앞 ‘정동 로타리’ 분수대.
정동 길은 이곳에서 시작되어 약 1km 서북쪽으로 이어지는 길로
구한말 우리나라에 들어 온 많은 외국인들이 자리 잡은 곳이다.
로타리에서 바라본 정동 길.
보도도 그렇지만 거리 양쪽으로 붉은 벽돌 건물이 유난이 많다.
그래 그런지 노랗게 물들기 시작한 은행나무 가로수가 정답다.
정동 길 초입에 자리 잡은 개신교 최초의 건물 ‘정동교회’.
문화거리에 있는 교회답게 월요 음악회를 한다는데
귀가 몸과 마음과 영혼을 맑게 해 준단다.
'정동 교회' 건물에는 십자가가 없는데 개화기의 고난을 말없이 웅변하고 있다.
정동 거리를 따라 구한말 역사의 흔적이 널렸다.
지붕 없는 박물관이란 바로 여기를 두고 하는 말일게다.
허나 ‘정동 길’이 근래 이름을 더 날리게 된 것은 노래 가사가 일조를 했다.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 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있어요.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
보도 위에 있는 요절한 ‘광화문 연가’의 작곡가 ‘이영훈’ 님의 노래작곡기념비.
그리고 아담한 ‘정동극장’.
이곳에서 매일 공연한다는 '미소(MISO)춘향 연가'는 1997년에 시작되어
작년 통계로 15년간 4.200회 공연, 무려 72만 명이 관람했다는데
이 기록은 연일 갱신 중으로 매일 오후 4시와 8시에 공연 된다.
작지만 강한 것이 바로 이거다.
정동 길에서 가장 서구적인 카페 ‘르플’.
70년대 새마을 기와집인데 메뉴는 완전 서양 판이다.
이 부근은 영락없는 구한말 거리 풍경으로 누구나 데자뷰를 겪는다.
그 옆 옛 ‘신아일보 별관’.
카페 ‘리풀’의 분위기를 살려주는 빈집.
신아일보는 지금 ‘경향신문’으로 통합되었다.
‘이화여고 100주년기념관’.
구한말 일반 가정집에서 ‘손탁호텔’로 신축, 다시 이화학당 기숙사 ‘프라이홀’로 재건,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이제 이화여고 기념관으로 새롭게 태어난 건물이다.
이 건물을 지은 사람들, ‘손탁’, ‘프라이’는 모두 여성이다.
그리고 보니 정동 부근에 있는 학교들은 대부분이 여학교다.
정동의 어원도 ‘신덕왕후’ 강씨의 능인 정릉에서 시작되었다니
이래저래 정동은 대한민국 아줌마들의 힘의 발원지라고 할 수 있겠다.
‘이화’와 마주보고 있는 ‘예원’.
알게 모르게 서울대로 가장 많이 학생을 올려 보내는 중학교다.
그 옆 단정하게 생긴 캐나다 대사관. 그리고 그 앞 나무 나이 520년의 ‘회화나무’
나무 안 다치게 하려고 일부러 저렇게 오목하게 지었다는데
사실은 저 자리가 ‘손탁 호텔’만큼이나 유명했던 예쁜 ‘하남호텔’ 자리다.
정동 길 북쪽 끝이자 ‘돈의문’의 옛 터 정동사거리.
일제강점기인 1915년 조선총독부가 철거한 이후로
서울 성곽 4대문 가운데 유일하게 미 복원 상태로 남아 있다.
황량한 풍경이 갑자기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느낌인데
서울 성곽 길 인왕산 구간은 바로 길 건너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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