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은 전망대만 들렀다가 안국동으로 직행했다.
언덕을 내려오다 만난 한옥 창이 달린 예쁜 옹벽
시간을 넘나드는 퓨전 담벼락이 멋스러워 기념사진 하나 찍었다.
안국역으로 내려오다 북촌로에서 찍은 ‘헌법재판소’
못된 법을 혼내주는 기관이라는데 법이야 뭔 잘못이 있겠는가.
법을 요리조리 피해가면서 사고치는 인간들이 못 됐지.
인사동 입구에서 바라본 안국동 사거리 풍경.
팔월 어느 여름날 오후 세 시의 모습이다.
인사동 넓은 길에는 놀러 나온 사람들이 넘친다.
간혹 차가 지나다니나 여기서만큼은 사람이 중심이다.
옛 서점 통문관이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서울 인사동이 화랑과 筆房, 골동품 거리가 된 것은 다 연유가 있다.
조선 왕실 그림을 그리던 화원들의 일터인 도화서 (圖畵署)가
바로 저 가림막 뒤쪽 견지동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에 필방뿐 아니라 골동품 상가까지 들어선 것은 일제강점기 때라고 하는데
인사동 북쪽의 북촌 양반가에서 흘러나온 고서화나 골동품들이 이곳에서 거래되면서
자연스레 상권이 형성된 것이다.
인사동 길에서 사람들이 제일 많이 붐비는 곳은 여기 쌈지길이다.
이곳을 인사동의 인사동이라고도 부른다는데 완전 인산인해다.
쌈지길은 직사각형으로 대충 지은 아케이드 형태의 건물 이름이다.
좁은 비탈길이 4층까지 이어지는데 자그마치 이 건물 한 곳에 70여개의 공예품 점과
디자인가게들이 성업 중이란다.
이 건물을 ‘쌈지길’이라고 부르는 것은 건물 전체가 하나의 길로 연결됐기 때문이라는데
그렇게 부르기에는 뭔가 좀 어색하다.
아무튼 각 층은 완만한 경사로로 이어져 이곳저곳 가게를 구경하며 걷다보면
옥상의 하늘정원까지 오르게 된다.
화구를 사러 인사동을 찾은 지가 생각해보니 삼십년이 지났다.
그러니 이곳을 자그마치 강산이 세 번 변하고 찾은 셈이다.
그러니 당연히 그 감회가 대단해야 마땅하거늘 어째 무감각이다.
세상은 가만히 있는데 사람만 변한다고 흔히 말하곤 하는데
우리나라만큼은 사람이고 세상이고 같이 변해 그러는가도 싶다.
전통문화의 거리라고 새긴 이정표 하나.
그러나 저 거리에는 사실 백년 넘은 우리 것들은 별로 없다.
반만년 문화유산은 내팽개치고 앞으로 앞으로만 외친 결과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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