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구경하고 밤도 줍고 하자면서 승호를 따라 강화 삼산농막으로 향했다.
김포평야 아래로 지나는 터널구간. 설마 파리 라데팡스 지하차도 방식은 아닐 텐데
늘 봐도 이상한 기분이 드는 곳이다.
강화도에 들어서자 길가에는 포도 파는 곳이 한 집 건너 들어섰다.
그냥 지나가기 미안해서 인산리 부근 노점에 잠시 차를 세웠다.
맛없으면 나올 때 반납하기로 했는데 그럴 필요 없는 정말 맛있는 강화 포도다.
이 저녁에 삼산도로 들어가는 배에는 거의 손님이 없다. 구명조끼를 걸친 마네킹이 비장한 모습으로 혼자 섰다.
배에서 마주한 ‘외포리 젓갈 수산 시장’. 그렇게 이곳을 오가면서도 아직 한 번도 못 들어가 봤는데
너무나 커다랗게 잘 지어놔서 부담이 되서다.
삼산도로 들어가는 배에서 바라본 남쪽 풍경으로 언제 봐도 멋진 ‘마리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왼쪽 끄트머리 뾰족한 봉우리가 ‘초필산’.
농막으로 들어가다 쓰러질 정도로 풍성한 수수이삭을 만났다.
승호는 저 수수알을 보면 늘 옛날이야기를 반복하는데 밥할 때 쪄서 한입에 쓱 훑어 먹은 맛을
도대체 잊을 수가 없대나 뭐라나.
농막으로 들어가는 오솔길은 운치가 있다.
계절마다 피는 꽃의 종류가 늘 다른데 이번에는 구절초가 단정한 모습으로 찾아온 우리를 반긴다.
'국수나무'가 주종을 이루는 길가에는 '구절초'를 비롯해서 미역취, 기름나물, 쑥부쟁이 등 야생화가 지천이다.
농막으로 들어서자 커다랗게 자란 두릅나무가 우리를 반긴다.
순이 올라오는 족족 따 먹었는데도 저리도 잘 자랐다. 참으로 대단한 나무가 아닐 수 없다.
농막의 여름작물은 다 끝물이다. 지주대만 요란한 오이 밭과 잡초에 뒤덮인 고구마 밭.
밭에서 지는 해가 오이 토마토라면 뜨는 해는 가을배추와 무다.
이 가을 맑은 이슬 먹고 산삼처럼 자라는 모습이 장하다.
겁도 없이 복숭아나무를 타고 올라가 매달린 호박.
누가 호박을 못생긴 것에 비유했는지 이 잘생긴 호박을 좀 봐야 하는데.
그렇게 여기저기 농막의 가을을 즐기다가 오늘은 옛날 어르신들 흉내나 내 보자며
밥 대신 막걸리로 저녁을 했다.
다음날 이른 아침 밭에서 만난 풍경.
안단테칸타빌레로 휘휘 늘어진 호박덩굴이 아침 인사를 건넨다. 굿 ~ 모 ~ 닝.
누가 벌써 지나갔는지 밤 밭에는 밤이 별로 안 보인다. 여기저기 배회하다 결국 마을 어귀까지 들어섰다.
개울가에 핀 보랏빛 '물봉선'.
그리고 가을의 전령 조 이삭. '조바심'이 조이삭을 터는 일을 가리키는 말이라는데
저 푸짐한 조를 터는 일이 정말 조바심이 들까 모르겠다.
밤 줍는 농막 숲 속 풍경 하나.
햇살이 숲을 여기저기 헤집어 놓는데 이따금 밤송이 낙하하는 소리가 적막을 깨뜨린다.
그 소리에 놀란 ‘털진득찰’ 꽃송이
그렇게 신통치 않은 밤 줍기는 금방 중단하고 결국에는 농막 안을 정리했다.
승호가 예초기를 들쳐 메더니 삽시간에 잡초 밭을 잔디밭으로 바꿨다.
어디든 뭐든 손이가야 사람 사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덜 주은 밤에 미련이 남아 다시 밤 밭으로 나갔다.
우리가 지나 간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그새 떨어진 밤이 꽤 있다.
플라스틱 그릇 하나 들고는 가끔씩 나가서 밤을 주워 담아 왔다.
오가다가 숲에서 발견한 외래종 '노란호박'.
이번에 새로 심은 250kg 나가는 종자라는데 이게 과연 그렇게 클지 그 종말이 궁금해진다.
그렇게 사진기 들고 가을 속을 돌아다니다 오후 늦게 농막을 나섰다.
석포리로 나오는 고갯길에서 만난 밤 파는 아줌마의 물건.
‘아니 밤을 이렇게 해서 팝니까?’
‘그려. 요즘은 이게 더 잘 팔려.’
먹는 것 이상으로 보는 것을 즐기는 세상. 그것이 이해가 되는 것이 익어가는 멋진 가을이 말없이 증명한다.
'석포리' 입구에서 바라본 '마리산' 쪽 풍경.
석포리에서 배를 기다리다 만난 석포리 부두가에서 사는 갈매기 하나.
새우깡 봉지를 들고 왔다 갔다 하는데 어디 홈쇼핑 호스트 하는 짓이다.
‘빨리 서두르셔야 될 것 같네요.
‘몇 개 안 남았어요.‘
아라뱃길 위를 차가 막 지나는데 해가 진다. 노을은 그 자체가 가을이다.
가을이 빨갛게 무르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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