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히 한 잔 생각이 나는 바람에 신대방역까지 가서 마주한 삼거리 먼지막 순대국 ‘특’
그 이유를 모르겠는데 순대국집 메뉴에는 꼭 ‘특’이 있다.
가게 안방 벽에 붙어 있는 커다란 흑백 사진 한 장.
언제 누가 왜 찍었을까 궁금하지만 아무런 설명이 없다.
그래서 볼수록 심플하다.
홀에는 서울 미래 문화유산이라는 플랜카드도 길게 하나 걸어 놓았다.
다시 말해 과거미래가 잘 혼합된 순대국집이다 라는 거다.
아무튼, 가게 전체 분위기가 딱 순대국을 닮았다.
한잔 두잔 걸치다보니 우리도 순식간에 비슷해지는데 꽤 괜찮은 술집이다.
사실 순대국은 술국이다.
오래된 아니 미래가 창창한 순대국집에서 잘 먹고 나서는데
한 잔 걸친 저 양반 자전거를 끌고 나선다. 음주자전거 벌금 20만원 이라는데
그렇게 본다면 음주 보행자도 벌금을 내야 형평이 맞는게 아닌가?
세상은 내 생각대로 가지는 않지만 한 잔 걸친 내 눈에 보이는 밤풍경은 늘 아름답다.
대방동 골목길 불 켠 오색간판들이 춤을 춘다.
앞서가는 승호의 뒷모습이다. 정 조준해 셔터를 눌렀지만 사진전체가 흔들렸다.
손에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주변 빛이 부족해서가 틀림 없다.
정신도 신체도 아직은 괜찮은데 세상이 그렇다는 거다.
바로 옆 풍경 선명히 찍힌 연금복권 스티커를 보세요.
복권사업은 돈을 얼마나 잘 버는지 광고스티커도 야광이다.
희끄무레한 외등 하나.
치유센터라는데 보기만으로도 힘이 빠지네.
그렇게 신대방역 쪽으로 걸어가며 놀다가 찻잔이 그려진 간판 앞에서 멈췄다.
굵은 베로 감싼 조명弔明.
딱 열 명 앉으면 꽉 찰 작은 커피 숍. 뭔 얘기를 했는지 하루사이에 기억이 없네.
사당 방향 신대방역 전철 플랫홈.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는 CCTV를 나도 찍었다.
찍고 찍히면 우리는 잠시나마 하나가 된다.
렌즈로 보면 세상은 늘 고만하다.
'사진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 동네 봄 풍경 (0) | 2016.04.01 |
---|---|
아파트 베란다의 봄꽃 (0) | 2016.03.31 |
평안도 왕만두 빚기 (0) | 2016.02.08 |
결혼 기념일 (0) | 2016.02.01 |
스크린 골프 (0) | 2016.0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