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 정문을 들어서면 나타나는 중앙통로. 복제품을 많이 전시한 곳이라는 가이드의 말을 듣고
호기심이 반감되었으나 그 복제품이란 것이 로마 사람들이 그리스 것을 보고 만들었다는 말을 듣는 순간
잠시 어리둥절했다.
박물관 중앙의 쉼터. 가운데 현대 조각가가 만든 입을 딱 벌린 흉상 모양이
딱 기함한 내 맘이로다.
전시관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 ‘파르네세 헤라클레스’(Hercule Farnèse).
이 헤라클레스 조각상은 현재 전 세계에 약 90여개가 존재한다는데
그중 이 대리석상이 전문가들도 인정한 최고의 작품이란다.
‘헤라클레스’ 앞에 ‘파르네세’라는 이름이 덧붙여진 것은
16세기 이탈리아 추기경이었던 ‘알레산드로 파르네세’를 기리기 위해서다.
성직자였지만 고대 미술품 수집가이자 예술 후원가로도 유명한 그는 많은 미술품들을 로마에서 수집하는데
그 중 하나가 이 작품이다.
317cm 크기의 이 헤라클레스 대리석상은
1546년 로마 카라칼라 목욕탕 발굴 과정에서 해체된 상태로 발견된 것으로
3세기 초 아테네 조각가 '글리콘'(Glykon)이 만들었다고 전한다.
원작은 기원전 4세기 그리스 조각가 '리시포스'(Lysippos)가 만든 것으로
청동으로 만들었다고 추측하지만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이 작품은 폭군의 대명사 '카라칼라'(198-217)가 목욕탕을 세울 때 봉헌된 것이라고 하는데
'알렉산드로 대왕'을 흠모했던 그의 마음을 대변한 것이라고도 한다.
조각상 뒷면으로 오른 손에 사과 세 개를 감추고 있다.
헤라클레스가 12 노역 중 11번째 과제를 수행하고 얻은 황금사과란다.
이 대리석상의 제목은 ‘휴식중인 헤라클레스’다.
천하장사가 쉬는 모습이 한층 더 역설적으로 보이는 것이
힘은 본디 쉼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근육으로 똘똘 뭉친 몸뚱이는 물론이고
그가 들고 있는 황금사과나 몽둥이에 걸린 '네미안'의 사자 가죽들이
쉬고는 있지만 알게 모르게 힘이 무언가를 말없이 웅변한다.
거기다 일반적인 조각상의 서너 배가 되는 거대한 몸집은 박물관 전체를 압도한다.
아무튼, 이 대리석상은 고대부터 지금까지 가장 모작이 많은 작품으로도 유명하다는데
특히 16세기 발견 이후 18세기까지 거의 모든 유럽 귀족의 저택에 모작이 놓일 정도로 널리 사랑을 받았다.
로마에 있던 이 대리석상이 이곳 나폴리에서 살게 된 일도 재밌다.
16세기 당시 스페인 국왕이 자국으로 로마의 예술품들을 옮겨가기 위해 이곳으로 힘들게 가져왔는데
그만 영국에게 패하는 바람에 이곳에서 멈추게 된 것.
사족 하나, 헤라클레스 동상 뒤편 벽에 전시된 종아리 두 개.
왼쪽이 '파르네세 헤라클레스'의 다리 원본으로
전시된 몸통의 종아리는 미켈란젤로의 제자 굴리엘모(Guglielmo)가 재현했단다.
같은 전시실에서 ‘파르네세 헤라클레스’와 마주하고 있는 또 하나의 거대한 대리석 조각상 ‘파르네세 황소’(Farnese Bull).
이 작품도 '카라칼라 욕장'에서 '헤라클레스' 대리석상과 함께 있던 것.
이 조각상도 기원전 2세기 그리스 작품을 서기 1세기 로마 조각가가 복제한 작품이라는데
거대한 하나의 '파로스 대리석'으로 만든 작품은 그리스 신화 속 이야기로
두 명의 청년이 날뛰는 황소에 한 여인(다르케)을 묶는 장면이다.
뒤편에는 또 한 명의 여인이 지키고 섰는데 바로 두 쌍둥이 청년의 어머니이자 이야기의 주인공 ‘안티오페’다.
미친 황소에 묶인 ‘다르케’는 결국 이 황소의 뿔에 받혀 죽게 되는데
이 이야기는 그리스신화의 복수혈전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것으로
고대 이래 그리스 로마 문학 미술 등 예술작품의 단골 주제다.
허나 신화는 신화라 치고 산만한 돌덩이를 갖고 어떻게 저런 작품을 만들 수가 있는지
미켈란젤로나 다빈치나 로댕 같은 예술가들을 신처럼 알고 살다가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신비한 조각상들을 마주하자니
내가 세상을 제대로 살았나 의문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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