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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메리카

비에 젖은 ‘아바나’ 거리

by 조인스 자전거 2012. 11. 27.

쿠바 관광 첫날 아침 시내로 들어가는데 비가 내린다.

대서양과 마주한 말레콘 해변에 집체만한 파도가 방파제를 넘는다.

이런 낭패가 다 있나 싶다.

 

 

 

 

얼룩진 차창에 비치는 도로변 구시가지 주택가.

빗방울 때리는 차창 속 낡은 집들이 유난히 을씨년스럽다.

 

 

 

 

쿠바는 수천 년 전부터 ‘시보네족’ ‘타이노족’ 등의 원주민 땅이었다,

그리고 1492년 콜럼버스가 쿠바에 건너온 이후 300년간 스페인 식민지로 있었다.

 

 

 

 

16세기 초 스페인은 아프리카의 흑인 노예를 물건처럼 수입하였다.

19세기까지 쿠바에 수입된 흑인 노예의 수는 백만에 이르렀다.

 

 

 

 

1898년 미 스페인전쟁으로 쿠바는 승전국인 미국의 삼 년 군정을 받는다.

이후 우리와 비슷한 길을 걷던 쿠바는 ‘카스트로’가 혁명으로 정권을 잡자 사회주의 길로 들어선다.

 

 

 

 

당황한 미국은 ‘피그스만 침공’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고

기고만장한 카스트로는 이후 독자노선을 걷다 쿠바 미사일위기를 불러온다.

이후 부자 미국과 가난하지만 깡 있는 쿠바는 서로 견원지간이 되었다.

 

 

 

 

쿠바 혁명 때부터 1990년대까지 30여 년간 120만의 쿠바인이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지금의 쿠바는 진정한 사회주의들이 사는 꼴이 되었다.

 

 

 

 

북한과는 1960년에 단독 수교하였으나

오십년이 지난 지금까지 세계의 패자이며 이웃인 미국은 아직도 쿠바와 수교를 맺지 않고 있다.

 

 

 

 

무소의 뿔처럼 카리브 해에서 홀로 사회주의 노선을 걷는 쿠바.

국민 모두가 어렵게 살지만 정권교체나 폭동 같은 것은 없다.

굶어 죽거나 아파 죽는 사람이 없고 위 아래 없이 같이 가난하기 때문이다.

 

 

 

 

이제 쿠바는 카리브 해에서 수십 년 단련된 야성의 몸뚱이를 관광자원으로 내 놓았다.

매해 늘어나는 관광객들은 지금 쿠바의 가장 큰 외화수입원이 되었다.

 

 

 

 

쿠바에는 ‘관따나 메라’라고 하는 유명한 민요가 있다.

지금 쿠바사람들은 ‘관따나 메라’를 ‘원달라 내라’로 부른단다.

 

 

 

 

 

‘Guantanamera’는 쿠바에서는 아리랑수준의 국민 노래다.

이 노래는 쿠바독립의 아버지인 ‘호세 마르티’가 쓴 시를 각색한 것이다.

 

 

 

 

‘관따나메라’는 ‘관타나모의 시골 여인’이라는 뜻이다.

쿠바 땅 동쪽 구석 ‘관따나모’에는 1903년 이래 지금까지

백여 년 동안 미국의 군사기지가 버티고 있다.

콜럼부스가 상륙한 곳도 ‘관따나모’란다.

 

 

 

 

 

‘관따나모’는 쿠바에게 한 맺힌 땅이다. 쿠바인은 미국을 제일 싫어한다. 그러나 달러는 좋아한다.

‘원달러 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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