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일이 있어 종로 3가에 갔다가 종묘를 1시간여 방문했다.
토요일이지만 영하 10도의 기온에 바람까지 불어대니 관광객은 거의 없다.
사람 없는 종묘 길을 한가롭게 걸을 수 있어 좋았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사진 속 세 줄로 된 길 중 가운데 길은 귀신이 다니는 길이란다.
이걸 모르고 내내 이 길로 다녔다. 과연 무식하면 용감하다.
오른쪽이 종묘의 중심인 정전 입구다.
귀신들이 출입하시는 남문에서 '정전'을 바라보았다.
사진으로 익숙한 풍경으로 수려하고 정연하며 엄숙하고 빼어나다.
종묘는 한마디로 왕과 왕비 승하 후 궁궐에서 3년 상을 치룬 다음에 그 신주를 옮겨와 모신 곳이다.
그리고 그 중심이 되는 건물이 이 정전이다. 완벽한 유교 의례와 최고의 재료 기술로 만든 묘다.
여기서 묘는 무덤과 다르다. 사람이 죽으면 '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백'은 땅에 묻힌단다.
백을 모신 곳이 무덤이라면 혼을 모시는 것이 '묘'이고 종묘는 바로 그 '묘'가 되겠다.
종묘 정전 높은 앞마당은 '상월대'라고 부르는데 관람객은 출입을 금했다.
하는 수 없어 '박석'에 카메라만 올려놓고 대신 보라고 했더니 이렇게 찍었다.
'박석'은 정전 마당에 깔린 돌인데 임진란 이후 재공사를 할 때
'박석' 까는 작업만 무려 2년이 걸렸다고 한다.
오늘 종묘는 어쩐 일인지 19개 '신실' 문이 다 활짝 열려 있다.
판문을 열어젖히고 발을 감아 올려 바람을 쐬고 있었다.
원래 일 년에 한 번, 5월 첫 번째 일요일에 연다는데 오늘이 바로 그날 이다.
사진 속 장면이 '신실' 딱 한 칸이다. 정전에는 이런 칸 19개가 나란히 있다.
어둠속에 보이는 것이 세종 신위를 모신 감실.
잠시, 새벽 1시부터 시작된다는 제례를 상상해 보았다.
왕은 왕세자, 영의정을 거느리고 차례로 술을 올리고 1실부터 19실까지
각 재실마다 축문을 하고 수 십 번 절을 했다. 그러니까 제례는 거의 하루 종일 걸리는 일이었는데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왕들이 종묘에 갈 즈음에는 어디가 아프다고 하는 일이 많았고
심지어는 안 가겠다고 신하들과 싸우는 일도 종종 있었다 한다.
당시 왕들이 가장 격하게 했던 신체운동 중 제일이 이 일이 아니었을까 혼자 생각했다.
'정전' 서편에 있는 '영녕전' 정문이다.
이곳은 정전의 별묘로서 태조의 4대 조상이 중심에 있고
나중에 왕으로 추존된 분과 재위기간이 짧거나 업적이 신통치 못한
정종, 단종, 명종, 사도세자, 문정왕후 등의 위패를 모셨단다.
그러니 종묘에는 폐위된 연산군과 광해군의 신위를 뺀
나머지 분들의 신위를 모시고 있는 셈이다.
'정문'을 통과해서 안으로 들어왔다.
정전과 흡사한 구조와 규모로 크기만 약간 작을 뿐 다른 점은 없다.
추운 날씨에 어제 살짝 내린 눈이 그대로 있다.
사방을 다녀도 뭐라는 사람 하나 없는 서울 한 복판에 숨어있는 적막한 공간.
왕이 죽으면 5개월 간 장사를 지내고 3년 상을 지낸다고 한다.
죽은 자가 산자를 타고 누르던 세상이었다.
이곳은 영녕전 동문으로 큰 남문은 귀신이 드나들고 좌우 작은 문은 왕이 드나들던 문이다.
문간에 서서 우두커니 바라보니 이곳에 섰던 사람들이 그려진다.
'영녕전'에서 다시 '정전'으로 가면서 본 서문. 고즈넉한 길에 어제 내린 눈이 하얗다.
조선 깊은 어느 겨울 그때도 저렇게 하얀 눈이 내렸겠다.
기둥보다 높은 기와지붕의 위용과 조심스러운 색깔의 배합은
마르고 닳도록 이어지는 우리 역사의 무게를 더해 종묘의 진가를 높이고 있다.
대낮 문을 활짝 열어젖힌 신실 속의 왕들이 보이는 듯하다. 운동복 차림으로 나서는 분도 계시고
막 기상하셔 부스스한 분도 계시네. 조상을 섬기는 마음은 나를 고찰하는 마음이기도 하다.
토요일 오후 한적한 종묘에서 머릿속으로 만화를 그렸다 반성문도 썼다 하며 정전을 나섰다.
다시 제실에서 정문으로 이어진 길을 걸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종묘는 영상으로만 알고 지냈지 직접 와서 본 것은 오늘 처음이었다.
세계에 유래가 없는 아름다운 목조 사당이며 500년 넘게 꾸준히 사용 관리해 온 문화유산 종묘는
듣고 배운 대로 감동적인 문화재였다. 하지만 이 신성지역을 한 바퀴 돌아보면서 드는 감상은
조선 문화에 대한 놀라움보다는 그 보존 상태와 관리의 허술함이었다.
한 겨울 서울시내 한복판에서 이 드라마틱한 목조 문화재를 관람하는 동안
한 명의 관리인도 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