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전들의 계곡에는 절벽 가장자리를 따라 돌로 된 성벽이 있다.
장벽은 많이 무너져 내려 아예 없어진 곳도 있다.
따라서 무너진 장벽 사이로 멋진 지중해 풍경들을 구경할 수도 있다.
장벽 틈으로 보이는 이웃한 마을.
저곳에 자리한 집 창문에서 바라보는 이곳 풍경은 어떨지 생각만 해도 환상적이겠는데 어째 호텔은 안 보이네.
어느 봄날 저 언덕 위에 앉아 바라보는 풍경은 또 어떨까.
언덕은 사방이 밀밭일텐데
그런 생각을 하다가 뚫린 장벽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올려다본 ‘헤라 신전’.
뽀얀 잎의 올리브 나무는 시칠리아에서 없는 곳이 없다.
그리고 안쪽에서 다시 올려다본 ‘헤라신전’.
올리브나무도 그렇지만 이곳의 황토색 흙도 꽤 인상적이다.
대리석과 모래흙의 로마와 가장 큰 차이다.
이곳 장벽에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면이 있다.
아치형 구멍의 묘실이다.
본래 이곳과 마주한 계곡에는 비잔틴 시대 때 기독교도들의 공동묘지가 있었다.
아마 독실한 기독교인 누군가가 무너진 신전 벽체를 무덤으로 사용했겠고
하나 둘 묘가 늘어나 장벽은 아예 지상의 카타콤을 이루게 되었다.
묘실 구멍은 각양각색으로 무슨 심사인지 아예 뻥 뚫은 곳도 있다.
예수님 재림 시 빨리 나오고 싶은 마음에 벽을 무덤으로 쓴 것 같은데
이 주검들은 한 술 더 떠 쉽게 나오려 그리했나 보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 생각은 다 거기서 거기인가보다
묘실 구멍의 크기로 당시의 신분과 재력을 과시하기도 했단다.
이 묘실은 색다르게 높은 곳을 파서 만들었다.
좌우 대칭의 아담한 가족묘 하나.
보기에 벌써 부티가 나는 것이 본래는 묘실을 이것저것으로 잘 꾸몄겠으나
모든 것들은 세월 따라 사라지고 뼈대만 남았도다.
무덤 장벽 너머로 지중해가 넓게 펼쳐진다.
벽만 보다가 하늘을 보니 역시 죽어서는 공중으로 사라지는 것이 옳지 않겠나 싶다.
그렇게 유럽대륙의 남쪽 끄트머리에 자리한 섬 동네.
시칠리아의 로마시대를 걸어 내려오다 올려다본 풍경. 햇빛이 뜨거우나 견딜 만하다.
그리고 장벽 너머의 벌판 길.
신전들의 계곡을 따라서 지중해로 나가는 도로이다.
우산소나무 가로수길이 유난히 돋보인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길은 지중해에서 나와 서쪽으로 뻗어 사라진다.
길을 따라서 아득한 저 멀리 어디쯤으로 로마 시절이 가고 있겠다.
로마는 자그마치 이 천년이 넘게 지속된 제국이었으나 결국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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