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꺼운 노트북을 날씬 울트라북으로 바꾸다가 발견한 터키 여행사진.
깜깜한 하드에 죽은 듯이 지내다 깨어난 사진이다.
'데린구유'(Derinkuyu)는 깊은 우물이란 뜻을 가진 터키 카파도키아 지역에 있는 땅 속 관광지로
지하 8층, 55m 깊이의 고대 지하마을이다.
관광지 분위기가 전혀 나지 별로 나지 않는 썰렁한 공터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표지판만이 이곳이 유적지임을 알려주는 곳.
입구도 어디 화장실 같은 작은 문 하나가 전부다.
땅속으로 들어가는 문이 되겠다.
그러나 좁은 통로를 내려가자 정말 사람이 살만한 공간이 하나 둘 나타난다.
이 지하 공간은 천연 동굴의 음침한 분위기와 많은 차이가 있었는데
특히 보송보송한 느낌이 드는 따뜻한 실내 공기가 인상적이다.
그래서인지 이곳에서 찍는 사진은 생각밖으로 깨끗하게 찍힌다.
미로처럼 얽히고설킨 통로를 따라 가다 보면 이곳저곳에 공터가 계속 나타난다.
그 빈 공간 벽에는 수많은 끌 자국이 선명히 남아있는데,
자국 하나하나에 얼마나 많은 땀이 담겨 있는지 보는 사람은 할 말을 잊는다.
좁고 꾸불꾸불 이어진 길과 이어진 많은 방들은
크기만 다르지 구조나 형태가 영락없는 개미집 모양이다.
그러나 깔끔하게 마무리된 사각형이나 혹은 원형의 공간들은 방의 기능은 물론이고
교회, 곡물 저장소, 사육장, 포도주 저장실, 학교, 묘지로도 사용 되었다고 전해온다.
방의 모양은 대개 비슷한데 크기는 많은 차이가 있다.
광장에는 안전을 위해 기둥을 만들기도 했다.
광장에서 연결된 좁은 골목들은 오르락내리락하며 방과 방을 연결한다.
그 아기자기함이 지상의 마을과 별반 다름이 없다.
땅 속 사람들은 낮에는 땅위로 올라가 하늘 아래서 농사를 짓고
어두워지면 땅속으로 내려와 하늘에 감사하며 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가르치며 살았다.
신앙의 힘으로.
땅 속 별세계를 한참 둘러보고 나와 돌아 본 출구.
그곳을 다시 보고 있자니 하루에 한 번씩 죽었다 살아난 당시 사람들이 보인다.
출구 바로 앞 풍경. 뾰족한 미나레가 땅 속에서 나오는 우리를 내려다본다.
천 여 년 전 기독교인들을 이곳 지하로 몰아넣은 주인공이다.
우리의 가엾은 영혼을 구원하겠다고 나타난 많은 종교와 그 세력.
그리고 그들끼리의 끊임없는 갈등과 대립, 충돌. 언제까지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음의 구덩이로
몰아 갈 지 아직도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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