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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일기

가을, 논둑에서

by 조인스 자전거 2009. 10. 15.

가을 논둑에 들어 서면

참게 잡던 옛날 생각이 난다.

날이 어둑어둑해지면 친구들과 홍두평 벌판으로 나갔다.

깡통을 잘라 만든 石油燈을 하나씩 들고서.

이윽고 벌판에 다다르면

마을 불빛은 멀리서 반짝이고 사방은 고요했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풀벌레 우는 소리,

논 물 흐르는 소리,

그리고 바람 소리가 전부였다.

가을 논에는 남은 물을 빼기 위한

논두렁을 잘라 만든 물길이 있었는데

우리는 낚시꾼이 물가에 자리 잡듯

물 흘러내리는 고랑을 하나씩 차지하고 앉았다.

그리고는 갖고 온 등으로 물길을 비추며

논에서 물길을 따라 강으로 내려가는 참게를 기다렸다.

참게들은 낮에는 숨어 있다 밤이 돼야 강으로 내려갔다.

간혹 내려가는 참게를 잘 보기 위해

깸파리라고 하는 흰 사기그릇 조각을 물길 바닥에 깔기도 했다.

드디어 기다리던 시커먼 참게가 슬며시 흐르는 물 아래 모습을 나타나면

그냥 주워 담기만 하면 되었다. 그 뿌듯함이란.

 

서늘한 바람 이는 가을 하늘에는

별이 총총하고

내리는 찬 서리에

몸은 흠뻑 젖었지만

그 밤은 외롭지도 춥지도 않았다.

어두운 벌판에서 燈과 함께 보낸

그 가을밤과

서걱거리던 벼이삭과

묵직한 참게의 무게가

아직도 느낌이 생생하다.

40년 전에는 그런 시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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