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그리젠토 아니 시칠리아 관광 제 1 명소

‘콘코르디아’(Tempio della Concordia) 신전.

 

 

현재 남아 있는 그리스 로마 신전들 가운데 가장 보존이 잘 된 건물.

신전 정면의 6개의 기둥은 현재 UNESCO 영문자로 변신하여

세계의 수많은 유적지들을 지키고 있다.

 

 

전해지는 이야기로 기원전 5세기에 세워진 이 신전은

계곡의 부서진 다른 건물들처럼 허물어져야 하나 기독교도들의 성전역할을 하는 바람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고 한다.

 

 

다른 생각의 사람들이 하는 말도 있긴하다.  

이곳의 많은 신전들이 지진으로 무너질 때 이 신전을 떠받치고 있는

땅 아래의 부드러운 진흙층이 지진의 충격을 완화해 주어 무너지지 않았다는 견해다.

 

 

아무튼, 이 신전 앞에는 다른 곳과 다르게 거대한 청동 조형물 (Ikaro Crashed)이 하나 있다 .

2011년 이곳에서 열린 폴란드 조각가의 작품으로 전시회를 끝내고 헌정된 것이다.

'이카루스'는 하늘로 날랐다가 너무 높이 오르는 바람에 날개를 붙인 밀랍이 녹아

바다로 추락했다는 그리스 신으로 신전과는 별 관계가 없으나 꽤 잘 어울린다.

 

 

청동 조각상보다 훨씬 더 잘 어울리는 장면.

신전 앞 늙은 올리브 나무아래에 앉은 노인부부의 뒷모습.

나무도 사람도 건물도 모두 한 통속이라서일까 분위기한번 좋다.

 

 

올리브 나무아래에서 본 아그리젠토 시내 쪽.

신의 동네에서 바라본 사람 사는 동네다.

 

 

450~400년경에 세워진 콘코르디아 신전은

그 생김새가 로마의 파르테논신전과 닮은꼴인데다 건축연대까지도 비슷하다.

누가 먼저인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으나 누군가가 베끼지 않았을까 의심이 갈 정도다. 

 

 

다만 크기가 다소 차이가 나는데 네이버 지식에서 정확하게 그 크기를 찾아 봤다.

‘콘코르디아’는 가로 20m, 세로 42m 높이 7m 열주는 가로 6개, 세로 11개

‘파르테논’은 가로 31m, 세로 70m로 높이는 10m 가로 8개, 세로 17개.

 

 

그리고 다른 점이 하나 더 있다.

신전 내부에 교회로 사용되었다는 구조물이 온전히 남아있다.

 

 

‘콘코르디아’ 신전은 로마 신화의 ‘콘코르디아 여신’의 신전이다.

즉 화합, 합의, 조화, 평화의 신전으로 로마 사회의 안정을 희구한다.

신전이 비교적 온전한 까닭이 이름 탓도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이 신전은 구경하는 내내 우리에게 친근한 느낌을 주는데

그 이유가 옛날 구슬치기하던 동네 앞마당과 비슷한 황토에 세운

황토색 건물이기 때문이다.

 

 

주 출입구를 통해 들어온 관광객들이 신전을 향해 올라간다.

‘고대사는 모두 로마사로 흘러들어 간다고 할 수 있다. 많은 개울이 호수로 흘러들어 가듯이,

그리고 근대사는 다시금 로마사에서 흘러나온다. 로마가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역사는 무의미하다.’

-1854년 바이에른 왕 막시밀리안 2세의 역사학 강의 중에서. 

- 나무위키에서 ‘로마제국’을 치면 뜨는 첫 화면에 뜨는 말이다.

 

 

신전들의 계곡에는 절벽 가장자리를 따라 돌로 된 성벽이 있다.

장벽은 많이 무너져 내려 아예 없어진 곳도 있다.

 

 

 

따라서 무너진 장벽 사이로 멋진 지중해 풍경들을 구경할 수도 있다.

 

 

 

장벽 틈으로 보이는 이웃한 마을.

저곳에 자리한 집 창문에서 바라보는 이곳 풍경은 어떨지 생각만 해도 환상적이겠는데 어째 호텔은 안 보이네.

 

 

 

어느 봄날 저 언덕 위에 앉아 바라보는 풍경은 또 어떨까.

언덕은 사방이 밀밭일텐데

 

 

 

그런 생각을 하다가 뚫린 장벽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올려다본 ‘헤라 신전’.

뽀얀 잎의 올리브 나무는 시칠리아에서 없는 곳이 없다.

 

 

 

그리고 안쪽에서 다시 올려다본 ‘헤라신전’.

올리브나무도 그렇지만 이곳의 황토색 흙도 꽤 인상적이다.

대리석과 모래흙의 로마와 가장 큰 차이다.

 

 

 

이곳 장벽에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면이 있다.

아치형 구멍의 묘실이다.

 

 

본래 이곳과 마주한 계곡에는 비잔틴 시대 때 기독교도들의 공동묘지가 있었다.

아마 독실한 기독교인 누군가가 무너진 신전 벽체를 무덤으로 사용했겠고

하나 둘 묘가 늘어나 장벽은 아예 지상의 카타콤을 이루게 되었다.

 

 

묘실 구멍은 각양각색으로 무슨 심사인지 아예 뻥 뚫은 곳도 있다.

예수님 재림 시 빨리 나오고 싶은 마음에 벽을 무덤으로 쓴 것 같은데

이 주검들은 한 술 더 떠 쉽게 나오려 그리했나 보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 생각은 다 거기서 거기인가보다

묘실 구멍의 크기로 당시의 신분과 재력을 과시하기도 했단다.

이 묘실은 색다르게 높은 곳을 파서 만들었다.

 

 

좌우 대칭의 아담한 가족묘 하나.

보기에 벌써 부티가 나는 것이 본래는 묘실을 이것저것으로 잘 꾸몄겠으나

모든 것들은 세월 따라 사라지고 뼈대만 남았도다.

 

 

 

무덤 장벽 너머로 지중해가 넓게 펼쳐진다.

벽만 보다가 하늘을 보니 역시 죽어서는 공중으로 사라지는 것이 옳지 않겠나 싶다.

 

 

그렇게 유럽대륙의 남쪽 끄트머리에 자리한 섬 동네.

시칠리아의 로마시대를 걸어 내려오다 올려다본 풍경. 햇빛이 뜨거우나 견딜 만하다.

 

 

 

그리고 장벽 너머의 벌판 길.

신전들의 계곡을 따라서 지중해로 나가는 도로이다.

우산소나무 가로수길이 유난히 돋보인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길은 지중해에서 나와 서쪽으로 뻗어 사라진다.

길을 따라서 아득한 저 멀리 어디쯤으로 로마 시절이 가고 있겠다.

로마는 자그마치 이 천년이 넘게 지속된 제국이었으나 결국은 사라졌다.

 

 

 

 

 

 

이천 오백년 전 신전은 폐허로 변했으나

그곳에서 바라보는 주변의 풍경은 여전하다.

 

 

 

북동 쪽.

그 시절 이 신전 앞에 앉아 바라본 풍경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으리라.

 

 

 

앞 도로는 섬 내륙을 지나 굽이굽이 섬 동쪽의 제1도시 ‘카타니아’로 향한다.

일대는 추수가 끝난 밀밭으로 온통 갈색이다. 해가 벌써 높이 솟았다.

 

 

 

동남쪽으로 시칠리아 남쪽 해안로를 따라 ‘시라쿠사’로 향하는 도로.

삼각형 모양의 시칠리아에는 기원전 각 면에 하나씩 큰 도시가 있었다.

이곳 ‘아그리젠토’, ‘시라쿠사’ 그리고 ‘팔레르모’이다.

 

 

 

북쪽,

아그리젠토 시내방향으로 중앙의 도로는

시내와 신전의 계곡을 연결하는 잘 닦인 관광도로다.

 

 

 

북서쪽으로 아그리젠토 시내 방향이다.

망원렌즈로 본 ‘아그리젠토’ 시내가 자연조명을 받아 환하다.

 

 

 

서쪽. 지중해 쪽으로 앞 도로의 우산소나무 길이 인상적이다.

저 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신전들이 길게 분포했다.

 

 

 

신전의 계곡 전경. 이곳에서 앞에 보이는 ‘콘코르디아 신전’까지 언덕을 따라 성벽이 이어진다.

그리스의 ‘핀다르’(Pindar 518~442 ?)라는 시인은 당시 ‘아그리젠토’를 일컬어

‘인간이 거주하는 곳들 중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며 찬양했다는데

모르긴 몰라도 아마 이 경치를 보고 한 말이겠다.

 

 

 

정 남쪽,

동과 서에서 모여든 다섯 개의 길이 회전교차로에서 만난다.

이천 오백년 전에도 틀림없이 그랬을만한 지형이다.

 

 

 

그 중에 하나는 바로 바다와 연결된다.

도시와 바다와 연결되는 그 중앙에 신전의 계곡이 자리한 셈이다.

배를 타고 왕래한 당시 사람들은 '아그리젠토'를 들락거릴 때마다 신께 경배했다.

 

 

 

‘헤라신전’에서 내려와 아쉬워서 다시 올려다본 풍경.

지금은 비록 돌덩이만 남은 폐허이만 분위기만큼은 여전히 신전의 도시다.

사실 이곳은 기원전 5세기 자그만치 인구 20만 명이 거주한 지중해의 거대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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