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처음 승호와 함께 농막으로 향했다. 연휴 때문인지 선착장이 자가용으로 만원이다.
‘외포리’ 페리들이 총 출동해서 분주히 차를 실어 나른다.
늦은 점심은 석포리 산까치 식당에서 했다. 요즘 나는 생새우라고 아주머니가 한 접시를 내 온다.
간이 안 된 육젖용 새우는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나온다.
오후 두 시경 농막에 들어섰다. 오늘 심을 서너 가지 모종과 승호 형이 더위에 찾아들은 외지인들을 반갑게 맞아 준다.
농막 주변의 잡초들이 우릴 보고 깜짝 놀라는데. 쑥대밭이란 표현이 바로 이런 모양을 보고 한 말이겠다.
강화 쑥을 비롯한 지칭개, 개망초, 가시풀이 정글처럼 우거졌다. 공연히 온 몸에 힘이 솟는데 오뉴월 한낮의 볕도 잊고
김매기에 나섰다.
일은 쉬엄쉬엄 카메라를 들고 왔다 갔다 하면서 했다. 여기서 처음 심었다는 자색 고구마가 벌써 자리를 잡았다.
겉은 감자 색깔인데 속은 연보라 빛이 나는 고구마로 잎 생김새도 많이 다르다.
그런가 하면 꼬챙이에 걸어놓은 장화들이 눈에 띄는데 일부러 만든 예술품과 뭐가 다른가.
이따금 찾아오는 주인 외엔 아무도 없는 쓸쓸한 농막 한구석에 핀 함박꽃은 또 어떤가.
키만치 자란 잡초를 뽑아내다 발견한 참개구리. 녀석은 언제나 내리치는 곡괭이를 묘하게 피해서 튀어나온다.
일하다 말고 뛰어가서 카메라를 들고 와 사진을 찍는데도 저러고 있다. 전투복과 똑같은 옷을 입은 커다란 참개구리이다.
땀으로 목욕을 하며 죽을힘을 다해 극기로 풀을 뽑다보니 그 많던 잡초가 뿌리를 들어내고 모두 들어 누웠다.
일한 보람이란 것이 바로 이것이 아닌가. 몸은 파김치가 되었지만 통쾌했다.
머슴이야 이제 할 일 끝냈으니 휴식모드지만 주인이야 그럴 수 있는가.
꼼꼼한 승호는 차마 일을 끝내지 못하고 뒷정리에 정신이 없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카메라를 들고 주변을 정찰했다.
일한 뒤의 상쾌함으로 그린 꽃과 벌 이 화려함을 넘어설 자 누가 있겠는가.
초록 나뭇잎에서 벌이는 한여름의 짝짓기. 그 단조로운 자세가 암수의 평등함을 한눈에 보여준다.
정신없이 바쁜 시골의 오후가 어느새 지나가고 서산으로 기운해가 농막을 비춘다.
저녁 햇살을 받아 문 금낭화가 등처럼 빛을 밝힌다.
그리고 엉겅퀴에 코를 박은 채 자는지 죽었는지 꼼짝 않는 이 분.
이제 그만 나오시라고 손가락으로 잡아 빼도 나오지 않는다. 그냥 놔두고 왔는데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
작은 호랑거미가 집을 짓는다.
혼자 출렁거리며 척척 줄을 잇는데 내가 이리 내려다보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르리.
씨를 탐스럽게 매단 달래.
꽃은 물론이고 그 기다란 꽃대가 알맞게 휘었는데 달래 마지막이 이렇게 아름다울 줄은 저녁이 다 되어 알았다.
드디어 해가 서쪽 능선너머로 넘어갔다. 밀짚모자는 이미 저녁이다.
두 사내는 일을 거두고 석포리로 내려가서 저녁을 했다. 아주머니는 제일 빨리 쉽게 만들 수 있다는 칼국수를 내어 왔다.
허기 하나로 맛도 모른 채 커다란 대야에 담아 나온 칼국수를 뚝딱 해 치웠다.
삼산면 어두운 숲길은 개구리 합창으로 요란하다. 깜깜한 숲 속 길에서 만난 불 밝힌 가로등.
가로등이 반갑기는 정말 오랜만이다.
텔레비전도 없는 밤 깊은 농막에서 할 일이라고는 술 먹는 일밖에 따로 할 일이 없다.
취기가 약간 돌자 여유가 생겨 승호가 휴대폰을 켰다. 남북 회담이 다시 열린다는데 저놈들이 꼼수가 과연 무엇일까?
둘은 궁리를 하면서 남은 막걸리를 들이켰다.
다음날 아침 방을 나서니 돌나물 꽃은 벌써 분주하다.
주렁주렁 열매 달린 보리수나무 곁을 왔다 갔다 하며 어제 못다 한 일을 이것저것 파고 뽑고 심고 했다.
하다 보니 몸이 힘에 부쳤는지 피곤이 몰려온다. 에라모르겠다 방으로 들어가 들어 누웠다. 농막은 낮에도 고요하다.
농막의 하루는 생각 외로 짧다. 어느새 해가 서쪽 산 능선을 향했다. 저 정도면 삼십분이 못 되 해는 넘어 간다.
부지런히 주섬주섬 이것저것 챙겨서 농막을 나섰다.
저녁 여섯시가 넘은 시각 강화 석모도 ‘석포리’에서 바라본 ‘외포리’.
강화로 향하는 패리에 오르는데 괜히 콧노래가 나온다. 극기를 하면 몸은 괴로우나 마음은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