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겨울 가기 전에 눈 내리면 등산 한번 하자고 했는데 하느님이 들으셨는지
바로 눈을 내리셨다.하는 수 없이 산을 올랐다.
삼십 여분 올랐는데 벌써 시내가 다 내려다보인다. 관악산은 능선 따라가며 서울 시내 보는 구경이 좋다.
등산가자 하면 뽑히는 우리에게 제일 만만한 산이다.
남쪽으로 멀리 '연주봉'이 보인다.
오늘은 목표가 저기라고 기세 좋게 말했지만 맞장구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북서쪽으로 카메라를 겨눴다. 눈이 그렇게 많이 왔다고 하는데 산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그냥 빌딩뿐이다.
빌딩을 저렇게 배경으로 두고 이렇게 아름다운 설산이 있는 곳은 모르긴 몰라도 대한민국이 유일할 것이다.
뭔 일 하자면 장비에 있어선 최고인 승호
겨우 자기 집 뒷산 올라가는 중이건만 스틱에서부터 완전 무장이다.
어제 서울에 내린 눈이 16.5Cm.
올 겨울 들어 최고 적설량이라는데 눈 온 다음날 거지 빨래한다고 오늘은 따뜻해서 좋다.
눈이 많이도 왔지만 설질도 좋아 걸을 때마다 뽀득뽀득 소리가 난다.
따뜻한 날씨에 유난히 신선한 공기와 하얀 세상이 좋다.
한 시간 쯤 올라 내려다 본 관악구 풍경. 유난히 포근하게 보이는 풍경이다.
하마바위 위로 보이는 관악산 송신탑.
기세 같아서는 저기까지 가고 싶지만 이 시간에 저기까지는 언감생심이다.
나로호처럼 보이는 남산타워가 정 북쪽 남산 꼭대기에 우뚝하다.
한참 보고 있자니 북쪽 저 멀리서 핵미사일 꼬나들고 다 같이 죽자는 망나니 집단이 떠올라 맘이 상한다.
좀 더 오르자 바로 앞에 마당바위가 나타났다.
이년 전 가을 등산 때 유턴한 곳이다. 그새 안 보이던 철 계단이 보인다.
소나무 위에 올라않은 크고 작은 눈송이들. 그 토실토실한 제각각 모습들이 다 눈사람이다.
늘 사람들이 붐비는 마당바위에는 비만형 산비둘기가 식사중이다.
요즘 산짐승들은 오냐오냐해서 그런지 가까이 가도 뭐하나 겁을 안낸다.
몇 번 미끄러지며 세월아 네월아 올랐는데 그새 오백 미터 고지까지 올랐다.
관악산도 산이라고 좀 오르니 쌓인 눈이 아래쪽하고 모양은 물론 질이 다르다.
휘휘 늘어진 가지에 이불처럼 쌓인 눈이 꽤나 무겁게 보인다.
등산로 가에 누구하나 건들지 않은 깨끗한 눈이 수북하게 쌓였다. 서울에서 두어 시간 올라와 맛보는 순백의 세상이다.
하얀 눈 세상에서 마음을 비우고 잠시 앉아 있자니 국회청문회에서 줄줄이 창피당하고 내려가는
지저분한 사람들 얘기가 나왔는데 결국엔 우리도 그렇게 됐다.
소나무 사이로 나타난 관악의 정상 연주봉 솔잎에 눈가루가 해처럼 걸렸다.
'연주봉'을 멀리 바라보고는 거기서 발길을 돌렸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세 번째 정상 포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