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후반 신천지 아르헨티나로 건너온 많은 스페인 이민자들 가운데는
항구 옆 얕은 개울가 여기 ‘보카 지구’에 터를 잡은 사람들이 유독 많았다.
잘 살아보겠다고 대서양 험한 바다를 건너 온 그들은
낯선 이곳에서 제각기 살 집을 마련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항구에서 얻은 나무판대기로 손수 집을 지었고
장난감 같은 집들은 하나 둘 늘어 마을을 이루었다.
보카 지역에 사는 부두 노동자들은 대부분이 여기 조선소에서 일을 했는데
배에 칠을 하고 남은 페인트를 갖고 와 자신의 집을 꾸몄다.
색깔에 관계없이 여기저기 칠을 하고 또 칠했다.
이제 백여 년이 훌쩍 지난 지금 보카 거리는
이러한 애틋한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야외 박물관이 되었다.
그들은 이제 관광객을 상대로 식당과 기념품가게를 열어 놓고 술과 기념품을 팔고
탱고 춤을 보여주며 생활한다.
우리들 고난의 삶 하나하나는 어렵고 힘들지만
그 삶이 하나둘 모여 쌓여 보존되면 문화를 만들어 낸다.
독특한 문화는 어디서든 우리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바야흐로 여행사진의 전성시대.
초기 이민자들의 향수 어린 이 낡은 거리는 이제 알록달록한 모습으로 관광객을 유혹하고 있다.
허나 화려한 색깔로 겉모습이 바뀌었지만
조금만 더 걸어 마을로 들어가면 아직도 옛날인 곳도 많다.
골목을 돌아 나오자 마주친 분노한 노동자들의 모습이나
비닐을 덧댄 창틀의 고단한 삶이나
거짓말처럼 색깔이 사라진 주택가가 어려운 이곳 사람들의 생활을 말없이 보여준다.
관광지화 된 약 일 킬로미터 지역만 벗어나면 아직도 보카 지구는 빈민촌이다.
우리가 찾은 첫날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 전기가 모두 나갔다.
남미 나라들이 대개가 그렇듯이 아르헨티나도 아직 어두운 곳이 많다.
이제 천 년 만에 등장한 비유럽권인 아르헨티나 출신의 새 교황의 등장을 보며
라틴아메리카에서 시작될 아시시의 성인 '프란치스코'를 닮는 변화하는 세상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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