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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아시아

인도, ‘아그라 성’ (Agra Fort)

by 조인스 자전거 2011. 3. 30.

‘아그라 성’의 주 출입구 ‘델리 게이트’ (DelhiGate).

철옹성이란 바로 이런 모습이다 하는 것 같은 색깔까지 녹 슨 쇠처럼 붉은 빛의 성이다.

 

 

 

성 자체도 그렇지만 들어가는 통로도 꽤나 무시무시하다.

석축으로 견고하게 포장된 길을 따라 3개의 아치형태 문을 지나면

 

 

 

드디어 성의 내부가 모습을 드러낸다. ‘자항기르 궁’ 앞에서 바라본 우리가 들어온 방향.

오른쪽의 건물처럼 큰 대문이 방금 들어온 서쪽 문이다.

 

 

 

‘자항기르 궁’ 입구도 성 입구만큼이나 튼튼하다.

‘아그라성’은 1565년 무굴의 3대 황제 ‘악바르’ 대제가 세운 요새로

그의 귀한 아들이자 4대 황제가 된 ‘자항기르’가 이곳에서 컸단다.

 

 

 

'아그라성'은 ‘악바르’ 대제가 세웠지만 지금의 '아그라 성'은

5대 황제 샤자한의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증개축이 있었단다.

따라서 성 안에서 온전하게 남은 자항기르 때의 건축물은 이곳뿐이란다.

 

 

 

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회랑. 붉은 사암을 정교하게 조각하여 건물을 치장했다.

 

 

 

인도 무굴제국 유적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일반적인 구조로

아라베스크 무늬는 물론 둥근 돔, 가는 기둥, 아치형 출입구의 특징을 보여준다.

 

 

 

‘자항기르’ 궁을 구경하고 북쪽으로 난 문을 나서자 완전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붉은 사암동네에서 흰 대리석 동네로 들어서는 기분이다.

샤자한이 세운 ‘타지마할’ 아니 ‘카스마할’이다.

 

 

 

이곳은 아그라성의 꽃이라 할 정도로 모든 게 아름답다.

‘Jahan Ara Pavilion’

 

 

 

모든 것이 흰 대리석이다. 연못까지

 

 

 

'아그라성'의 하이라이트인 샤자한의 개인 거처. 왕의 침실을 비롯한 가족들의 방이다.

 

 

 

 

흰 대리석으로 도배를 한 곳곳에는 금과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었다고 한다.

'피에트라 두라' 기법(대리석을 파서 그 홈에 여러 색의 돌이나 보석을 박아 넣는 기법)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카스마할’은 정사각형형태로 가운데 화단이 있고 사방을 회랑이 둘러싼 2층 구조다.

이곳은 2층 베란다로 왕의 접견실이라 부르는 ‘디완이하스’ 이다.

교자상처럼 생긴 곳은 뜻밖에 황제의 옥좌란다.

 

 

 

요즘도 이렇게 많은 앵무새들이 찾아온다는데 왕은 가고 없다.

 

 

 

황제의 집무실 ‘디완 이 카스’ 와 앞마당인 '파치시 코트'(Pachisi Court).

 

 

 

정면의 팔각지붕을 이고 있는 곳은 ‘무삼만 버즈’ 로 일명 ‘포로의 탑’으로 

성의 주인공 ‘샤자한’이 생의 마지막 8년을 저곳에 감금당한 채 1666년 세상을 뜬 그 곳이다.

저 건물 뒤 안개 속 멀리에 ‘타지마할’이 보인다.

 

 

 

샤자한의 작품 ‘디완 이 카스’와 ‘마치 바완’(Macchi Bhawan).

잔디 광장은 바자르가 열려서 궁녀들이 2층에서 내려와 장을 봤다고 한다.

사진 앞쪽은 궁녀들의 거처인 나기나 마스지드(Nagina Masjid)다.

 

 

 

외부 궁전인 '디완 이 암'. 이슬람 건축의 특징인 아치형 연결 기둥들이 돋보인다.

 

 

 

 

1628년 세워진 강연장 '다완이암'. 대중이 참가하는 공식적인 의전과 행사 장소.

 

 

 

왼쪽에서 성의 남문을 돌아 나와 바라 본 ‘아그라성’의 위용.

높이가 20m에 이르는 성벽은 거의 절벽에 가까운데 해자가 또 그 높은 성을 감싸 안았다.

 

 

 

붉은 성 위에 올라앉은 흰 궁전 ‘카스마할’.

1627년 자한기르의 뒤를 이어 등극한 샤자한은 1648년까지 이곳 아그라성에 살았다.

그러나 1658년 사십 먹은 셋째 아들 ‘아우랑제브’에 의해 황제자리를 찬탈 당하고

저곳 ‘무삼만 부르즈’에서 갇혀 살다가 1666년 세상을 떴다.

 

 

 

무굴시대의 유적지 정점에는 샤자한의 타지마할과 아그라성이 있다.

그 덕에 무굴은 세계적인 문화로 인정을 받는다.

무굴은 몽골의 다른 식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