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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일기

자유공원 나들이

by 조인스 자전거 2009. 4. 14.

화창한 봄이 놀자고 하도 꼬드기는 바람에 인천 자유공원 나들이를 하였다.

집에서 1시간여 거리의 가까운 추억은 늘 거기 있어서 가지 않아도 간 느낌이다.
그런 이유로 생각해 보니 자유공원에 갔던 것이 무려 십 년이 훨씬 넘었다.
동인천 자유공원은 아내나 나나 어릴 때 같이 놀던 곳이다.
문을 나서자마자 먼저 라일락이 인사를 한다.

“잘 다녀오세요.” 
 라일락은 연두색 잎, 연보라 꽃송이, 연한 향이
잘~연~결된 모범생 같은 꽃나무다.

 

 

 

 

동인천 역에서 내려 어슬렁거리며 마누라 모교로 향했다. 얼마 안 있어 校舍가 헐린다고 들러보자고 해서다.

30여 년 전 아내가 오갔던 등굣길을 걷자니 예쁜 간판들이 눈길을 잡아당긴다.

인천시에서 일부러 만든 아름다운 간판이 있는 거리란다.

시각공해 주범으로 야단맞는 간판이 여기서는 아름다운 볼거리다.

미적 구성이나 색채가 웬만한 설치미술 전시회 뺨치겠다.

 



자유공원 언덕 위에 있는 마누라 모교. 

내년이면 헐린다는 圓形校舍가 낡은 모습으로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다.

아내는 연방 중얼거린다. “아니, 학교가 왜 이리 작아졌지.”  내가 봐도 그렇다.

허나 학교가 작아지지 않은 것은 확실하니 나이가 우리를 크게 만들었음이 틀림 없겠다.

30년 보고 듣고 살아온 세월이 이 큰 학교를 그만 납작하게 만든 거다.

 

 

 

 



국기 게양대에는 변함없이 태극기가 걸렸는데 校舍 앞으로 보이는 인천시내 풍경은 많이 변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디서나 내려다보면 아파트다. 삼천만 국민은 그동안 그저 아파트만 지었나 보다.

아직도 모자란다는 아파트.

 

 

 

 



공사가 한창인 校舍 뒤편. 고목이 된 벚나무가 눈처럼 꽃잎을 날린다.
두리번거리는 마누라 머리 위에도 꽃잎이 떨어진다.

 

 

 

 

 

 

허한 마음으로 학교를 나와 자유공원 올라가는 도중에 만난 홍예문이다.

100년 전 일본인들이 만든 다리를  50년 전 이 다리 위에서 콧물을 훔치며 눈썰매를 타던 꼬마가 사진을 찍었다.

따듯한 봄날 마누라까지 옆에 두고 말이다. 상춘객들로 자유공원 오르는 길이 북적인다.

오후 2시의 봄볕이 내리 쪼이는데 아련한 기억에 따스한 햇살에 잠시 정신이 몽롱했다.

 

 

 

대한민국 공원에는 늘 번데기가 있다.

우리세대에는 솜사탕보다 번데기가 입맛에 맞는다.
누군가 번데기가 중국산이라고 하는데 아무렴 어떤가 설마 먹고 죽는 걸 팔기야 하겠는가.

번데기 컵을 하나씩 사 들고 자유공원으로 향했다.

이제서야 제대로 나들이 구색을 갖춘 것이다.

 

 

 

눈에 익은 맥아더 동상. 그시절 우리에게 맥아더는 영웅이었다.
김일성 공산당이 무지막지하게 밀고 쳐들어 왔던 야만의 시절,
맥아더는 힘없던 우리에게 힘센 형님이었다.
한방에 김일성괴뢰군을 보내버렸다. 파란 눈의 영웅은

남의 나라 공원 한복판에서 반세기 넘도록
자유진영의 승리를 축하하고 있는데
그 전쟁은 아직 진행중이다.

 

 

 

 

 



차이나타운 쪽이 번잡하고 먼 것 같아 신포동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계단에 서니 인천항 국제여객터미널이 코앞이다. 상륙작전 때 연합군 함포가 날아오던 방향이다.
포탄 대신 벚나무 꽃잎이 하나, 둘, 셋 바람에 날린다. 마누라는 포즈를 잡고 나는 셔터를 눌렀다.

 

 

 

 



신포동에 들러, 옛날 생각에 쫄면가게에 들렀다. 보기에는 허옇지만 엄청나게 맵다. 매운맛에 먹는 음식이다.
옛 생각 하며 몽땅 바뀐 몸과 마음으로 하나도 변하지 않은 음식을 먹어 보자니 땀이 나고 속이 얼얼하다.
코드가 잘 맞지 않는다.

 

 

 

6시가 넘어서 집에 도착했다. 봄날이라 아직 밖이 훤하다.

라일락과 눈이 마주쳤다.

“잘 다녀오셨어요?”

예뻐서 사진을 또 하나 찍어주었다.

보석 같은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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