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주사와 석불
'운주사'.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 천불산에 있는 절.
이 절의 창건연대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신라말 도선국사가 풍수지리에 근거해 비보사찰(裨補寺刹)로 세웠다는 설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즉 우리나라의 지형을 배 모양에 비유, 배를 진압할 물(物)이 없으면 침몰하기 쉽기 때문에
그 중심부분에 해당하는 운주곡에 천불천탑을 하룻밤 사이에 세워 내실을 기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운주사와 도선과의 연관은 어떤 문헌에서도 찾아볼 수 없으므로
조선 후기에 유행한 비보사상을 바탕으로 후에 첨가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동국여지지〉에 고려승 혜명이 무리 1,000여 명과 함께 천불천탑을 조성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으로 본다면 운주사는 고려초에 건립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 절의 연혁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1530년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운주사는 천불산에 있는 절로서 천불천탑과 석불 2구가 서로 등을 맞대고 앉아 있는 석조감실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1984년 제1차 발굴조사 때 '홍치 8년'(弘治八年)이라고 새겨진 기와편이 발견되어
1495년에 4번째 중수가 있었던 사실을 알 수 있으므로 조선 초기까지는 존속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뒤 정유재란으로 폐사된 것을 1800년경에 설담자우(雪潭自優)가 땅에 묻힌 불상과
무너진 불탑을 세우고 약사전 등을 중건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84~89년 4차례에 걸친 전남대학교 박물관의 발굴조사 과정에서 금동불입상을 비롯하여
순청자, 상감청자, 분청사기의 파편, 기와편 등이 출토되었다.
그 결과 운주사는 늦어도 11세기 초에는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는 비구니가 수도하는 절로 요사채·종각, 그리고 새로 신축된 대웅전·지장전·승방 등이 있으며,
주변에 91구의 석불(완형 50구)과 21기의 석탑 등이 흩어져 있다.
이 가운데 석조불감, 9층석탑, 원형다층석탑, 와불(臥佛) 등이 대표적이다.
- 다음 백과사전에서
산에서 내려와 출구를 향하면서 본 계곡에 있는 탑과 석불들.
그 유래를 알 수 없는 불탑과 불상들 사이를 다니다 보니
불심보다는 그 신비스러움에 마음이 정화되는듯했다
이곳 석불의 특징 중 하나는 대개의 불상이 가슴에 손을 얹고 있다는 거다.
뒤집어 생각해 보자니 늘 간절히 원하기만 하는 우리들의 자화상 같다.
지금의 행복은 뒷전이고 그저 행복하기 위해 사는 우리.
욕심을 꼬집는 모습이 아닐까 혼자 생각했다.
운주사를 나오며 멀리 올려다본 '공사바위'.
누구든 운주사에 오면 저 바위에 올라 지금 나가고 있는 이곳을 바라보게 된다.
이곳에 서서 저곳을 바라보니 왔던 길이 갔던 길이고 갈 길이 올 길이다.
나오는 길에서 들어올 때 못 봤던 불상이 보인다.
우두커니 서있는 불상의 무리가 무심한 표정으로 우리를 배웅했다.
아침 10시 텅 빈 운주사를 빙빙 돌아 나올 동안
우리가 만난 이는 들어갈 때 만난 2명의 여자 아이들이 전부다.
구름같이 가벼운 절 같지 않은 절. '운주사'.
참, 개울 건너에서 다람쥐 배웅을 받았다.
그런데 저 입에 물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지금도 모르겠다.